항목 ID | GC04300798 |
---|---|
한자 | 宋之翰 |
이칭/별칭 | 우번(于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권만용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우번(于蕃). 고조할아버지는 내자소윤(內資少尹)을 지내고 이조판서에 추증된 송신생(宋辰生), 증조할아버지는 경원 부사(慶源府使) 역임 후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된 송만달(宋萬達), 할아버지는 훈련 도정을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송공손(宋恭孫)이며, 아버지는 영의정 송질(宋軼)이다. 어머니는 남원 양씨(南原梁氏)로 이조판서 양성지(梁誠之)의 손녀이고 종친부 전첨(宗親府典籤) 양원(梁瑗)의 딸이다. 첫째 부인은 정부인 의령 남씨(宜寧南氏)로 영의정 남곤(南袞)의 딸이다. 둘째 부인 경주 김씨는 형조 정랑을 지낸 김현조(金顯祖)의 딸이다. 아들은 송인(宋寅)[1517~1584]으로 중종의 셋째 딸인 정순옹주(貞順翁主)와 혼인하여 여성위(礪城尉)가 되었고, 명종 때 여성군(礪城君)에 봉해졌다.
[활동 사항]
송지한(宋之翰)[1493~1563]은 1507년(중종 2) 15세 때 공신의 적장자로서 사맹(司猛)[오위 소속의 정팔품 군직]에 제수되었고, 1523년(중종 18) 장원서 별제가 되었다. 이후 사복시 주부(司僕寺主簿)에 올라 사포서 사포(司圃署司圃)와 호조 좌랑을 역임하고, 한성부·군자감·군기시의 판관을 거쳐 형조 정랑·공조 정랑·호조 정랑을 지냈다. 1545년(인종 1) 홍주 목사에 이어 1547년(명종 2) 위사공신을 봉할 때 공신의 적장자로서 통정대부로 승계되었다. 회양 부사·남양 부사·첨지중추부사·장단 부사에 이어 괴산 군수를 지냈다.
[묘소]
경기도 양주시 은현면 선암리 산45-1번지[용암로 161번길]에 묘소와 신도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1564년(명종 19) 3월 묘갈이 세워졌다. 형조 판서 겸 예문관 제학 윤춘년(尹春年)이 글을 짓고, 아들 송인이 쓰고, 상의원정 겸 교서관 판교 승문원 참의 박영(朴詠)이 전액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