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2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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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廣積面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도남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양주군 광적면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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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15년 10월 - 21개 리를 7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3년 7월 - 7개 리 중 덕도리를 덕도1리·2리, 비암리를 비암1리·2리로 분할하여 9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75년 1월 - 가납리를 가납1리·2리, 효촌리를 효촌1리·2리로 분할하여 11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80년 1월 - 가납리를 가납1리·3리, 비암2리를 비암2리·3리, 덕도1리를 덕도1리·3리로 분할하여 14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1999년 5월 - 광석리를 광석1리·2리로 분할하여 15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3년 10월 19일 - 양주군 광적면에서 양주시 광적면으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6년 7월 - 가납1리를 가납1리·4리로 분할하여 16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7년 5월 - 석우리를 석우1리·2리로 분할하여 17개 리로 개편 |
변천 시기/일시 | 2007년 12월 - 비암리를 비암1리·2리로 분할하여 16개 리로 개편 |
법정면 | 광적면 -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
성격 | 법정면 |
면적 | 48.44㎢[2014년 12월 31일 기준] |
가구수 | 5,330세대[2016년 6월 30일 기준] |
인구(남,여) | 11,790명[남자 6,345명, 여자 5,445명][2016년 6월 30일 기준] |
[정의]
경기도 양주시에 속하는 법정면.
[명칭 유래]
광적면(廣積面)은 광석면(廣石面)에서 ‘광’자와 석적면(石積面)에서 ‘적’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광석면이라는 이름은 현재의 광석리에 펼쳐져 있는 넓은 들판에서 비롯되었다. 즉, 넓은 들판을 의미하는 ‘너븐달’이 ‘너븐돌’로 읽히고 이것이 한자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광석(廣石)’이 되었다. 석적면도 들판과 관련이 있는 이름이다. 즉, 들판이 계속 펼쳐진 곳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석적(石積)’으로 표기하였다. 따라서 광적면의 땅 이름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있는 넓은 들판에서 유래하였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의 광적면은 대개 광석면과 석적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광석이라는 땅 이름은 18세기의 문헌인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에서 처음 확인된다. 이후 『해동지도(海東地圖)』[1760], 『호구총수(戶口總數)』[1789], 『양주목읍지(楊州牧邑誌)』[1842], 『대동지지(大東地志)』[1864], 『양주목읍지』[1871], 『조선지지략(朝鮮地誌略)』[1888], 『양주군읍지(楊州郡邑誌)』[1899], 『양주읍지(楊州邑誌)』[1899]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석적은 『태종실록(太宗實錄)』 태종 8년(1408) 4월 2일 기사에서 처음 확인된다. “세자 이제가 경사에서 돌아오니[중략]……좌의정 성석린과 육조판서 등은 성 서쪽 석적의 들에 나가서 맞이하였다.”는 부분이다. 이후 『해동지도』[1760], 『여지도서』[1757~1765], 『동국여도(東國輿圖)』[1801~1822], 『청구도(靑邱圖)』[1834], 『양주목읍지』[1842],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 『대동지지』[1864], 『양주목읍지』[1871], 『조선지지략』[1888],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에서도 확인된다. 한편 『호구총수』[1789]에서는 석적면 대신 서석적면(西石積面)이라는 이름이 나온다.
광적이라는 땅 이름은 일제 초기의 문헌인 『신구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 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1917]에 처음 등장한다. 이곳은 대한 제국 시기까지만 대부분 광석면과 석적면에 속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1914년 일제의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광석면의 일패리·이패리·삼패리·사패리 전부, 석적면의 거마리·대조리·삼패하리·항동리·효가동·신촌리·이패중리·삼패상리·대야지리 전부, 이패하리·회촌리·행동리 일부, 백석면[현 양주시 백석읍]의 능내리·고릉리·단촌리·연평리 일부, 파주군 광탄면의 발랑리 및 천현외패면 일부, 적성군 남면[현 양주시 남면]의 상수리·매곡리 일부를 합하여 새롭게 광적면이라 하였다.
그리고 광적면을 가납리·광석리·우고리·비암리·효촌리·덕도리·석우리의 7개 리로 구성하였다. 면 소재지는 이때부터 가납리에 위치하기 시작하였다. 해방 이후에도 일제 초기에 개편된 광적면의 행정 구역이 계속 유지되었다. 2003년 10월 19일 양주군 광적면에서 양주시 광적면으로 개편되었다.
[자연 환경]
광적면은 동쪽으로 도락산(道樂山)[441m], 서쪽으로 노고산(老姑山)[400m], 남쪽으로 노아산(老兒山)[335m]에 둘러싸여 있다. 대부분이 산악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고, 강화천 상류변의 가납리를 중심으로 좁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현황]
광적면은 양주시 서부에 위치하며 장흥면, 백석읍 다음으로 면적이 넓다. 2014년 12월 31일 기준으로 면적은 48.44㎢이며, 2016년 6월 30일 현재 인구는 총 5,330세대에 11,790명[남자 6,345명, 여자 5,445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납리·광석리·우고리·비암리·효촌리·덕도리·석우리의 7개 법정리와 16개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광적면은 양주시에서 문화 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양주문화예술회관이 광적면 광석리에 있으며, 양주의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하고 향토 역사를 연구하는 심장부의 기능을 담당하는 양주문화원이 광적면 가납리에 있다. 가납리에는 양주문화원 이외에도 광적면사무소와 우체국, 경찰지서, 농협 등이 집중되어 있어 지역 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가래비장은 300여 년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유동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동쪽은 양주시 은현면, 서쪽은 파주시 광탄면과 법원읍, 남쪽은 양주시 백석읍, 북쪽은 양주시 남면과 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