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1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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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臥牛里檀君殿 |
이칭/별칭 | 와우리 천진궁 |
분야 | 종교/신종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단군전길 195-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고수연 |
건립 시기/일시 | 1987년 - 와우리 단군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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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매년 음력 3월 15일 - 어천제 제향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매년 음력 10월 3일 - 개천제 제향 |
현 소재지 | 와우리 단군전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단군전길 195-1[와우리 694] |
성격 | 단군전 |
양식 | 겹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본당]|5칸[서재] |
측면 칸수 | 2칸[본당]|2칸[서재] |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의 단군전.
[개설]
단군전은 천진궁(天眞宮)이라고도 부르는데, 단군의 영정을 봉안한 집을 말한다. 1909년(순종 3) 1월 15일 중광절에 대종교를 개창한 홍암대종사(弘巖大宗師) 나철(羅喆)은 대종교를 널리 펴기 위하여 단군 영정을 다량으로 모사하여 국내에 보급시켰다.
[위치]
서산시 운산면의 고창저수지를 지나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龍賢里磨崖如來三尊像)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왼쪽 도로로 가다 보면 ‘와우1리 단군전’이라고 써 있는 표지판이 길가에 세워져 있다. 그 길로 접어들어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모촌마을 안쪽으로 진입하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와우리 단군전(臥牛里檀君殿)이 위치하고 있다.
[변천]
한일 합병이 되자 김용학(金容學)이 벼슬을 버리고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 모촌으로 내려와 은거하면서 초가를 짓고, 서울에서 가지고 왔던 단군 영정을 봉안하니 이 건물을 천진궁이라 하였다. 김용학은 단군 제향을 위하여 위토(位土)를 마련하고 연 2회 춘추로 제향해 왔다.
일제의 탄압이 심하던 시기에는 단군의 영정을 빼앗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일본인들이 많았다. 이에 한때는 제향을 중단하고 골방에 이중벽을 만들어 비장하였다. 해방을 맞아 지방 유지들의 협조를 얻어 다시 천진궁을 세우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현재는 김용학이 건립한 건물은 없어졌고, 1987년 서산시 운산면 와우리의 예산으로 건립된 단군전이 남아 있다.
[형태]
홍살문과 서재, 내삼문(內三門), 본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홍살문을 지나 포장된 길을 따라 가면 좌측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을 올린 서재가 있다. 그리고 10여 개의 계단을 올라 내삼문을 지나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본당이 있다. 본당은 이익공(二翼工)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단군전’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내삼문 주위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다.
[현황]
매년 춘계 음력 3월 15일과 추계 음력 10월 3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옥녀봉 밑에 새로 단군전을 건립하여 와우리 단군전의 영정을 이안(移安)하려고 하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반대로 온전히 지켜 가고 있다. 춘추 대제를 올릴 때에는 예산군과 예산군 고덕면 구만리, 당진군 면천면 등지는 물론 각 지방에서 찾는다고 한다. 2011년 현재 와우리 단군전의 관리 단체로는 와우리 단군전봉안회가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와우리 단군전은 대종교의 사묘로서 남한에서는 그 역사가 가장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