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700142 |
---|---|
한자 | 靑松里 |
영어공식명칭 | Cheongsong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청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지훈 |
[정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청송리(靑松里)라는 지명은 조선 후기에 지역 사람들이 세 그루의 노송(老松)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은 데서 비롯되었다. 대치리·삼송정리·도청리를 병합하면서 ‘도청’과 ‘삼송정’의 이름을 따 청송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대자·도청·배일 등이 있다. 대자마을은 마을 서쪽에 큰 고개가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고, 도청마을은 전의이씨와 거창신씨가 살면서 서로 의좋게 모이는 도회청을 두어 도청(都廳)이라 한 것이 일제강점기 때 쉬운 글자를 취하여 도청(都靑)이 되었다. 배일마을은 안동권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권주(權柱)가 의병 300명과 군량 450석을 지원하려고 금산 싸움에 갔다가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이후 안동권씨들이 일본을 배척한다는 뜻으로 배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청송리는 조선 후기에 전의군 동면 지역이었다. 예전부터 세 그루의 노송이 신앙의 대상이 되어 청송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 이웃 마을을 병합하여 청송리라 하고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에 편입되었다.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에 속하여 있다가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으로 편입되었다.
[자연환경]
청송리의 북쪽에는 운주산이 있어 약 460m의 산지를 형성하는데, 동쪽과 서쪽으로 가면서 200m 정도로 낮아진다. 남쪽은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조천과 접하고 있어 평지가 나타난다. 섭장골에서 물이 시작되어 조천으로 흐르는 소지류와 배일마을에서 조천으로 흐르는 소지류에 의하여 남북방향으로 긴 개석곡(開析谷)[하천의 침식 작용으로 생긴 깊은 골짜기]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0년 8월 기준 총 209가구로 386명이 살고 있다. 청송리는 국사봉과 연수봉 등의 낮은 산지가 분포하며 마을 앞으로 조천이 흐른다. 청송농공단지가 있고 경부선과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간다. 전통장류를 만드는 뒤웅박고을과 세종전통장류박물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