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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 잡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000698
한자 靑城雜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기도 포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64년연표보기 - 『청성 잡기』 활자화
소장처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50
성격 문헌|전적
저자 성대중(成大中)
권책 1책
규격 25.9×17.8㎝

[정의]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성대중의 잡록집.

[저자]

성대중(成大中)[1732~1812]은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 자는 사집(士執), 호는 청성(靑城), 아버지는 찰방 성효기(成孝基)이고, 아들은 연경재 성해응(成海應)이다. 1753년(영조 29)에 생원이 되고 1756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서얼이라 벼슬길에 오르지 못할 처지였으나, 서얼 통청 운동(庶蘖通淸運動)에 힘입어 1765년(영조 41) 청직(淸職)에 임명되었다. 1763년 통신사 조엄(趙曮)을 수행하여 일본에 다녀왔고, 1784년(정조 8)에 흥해 군수(興海郡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벼슬은 부사(府使)에 이르렀다.

학맥은 낙론계(洛論系)에 속해 성리학을 탈피하지는 못했으나, 북학 사상에 심취하여 홍대용(洪大容)·박지원(朴趾源)·이덕무(李德懋)·유득공(柳得恭)·박제가(朴齊家) 등과 교유하였고, 스승 김준(金焌)에게 전수받은 상수학적(象數學的)인 학풍을 발전시켜 북학 사상의 형성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저서로 『청성집(靑城集)』[10권 5책]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청성 잡기(靑城雜記)』의 저술 배경 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원본은 이병도(李丙燾)가 소장하였고, 1964년 김화진(金和鎭)의 소개로 『도서』 제6호에 전문이 활자로 소개되었다.

[형태/서지]

1책의 필사본으로, 크기는 25.9×17.8㎝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취언(揣言)·질언(質言)·성언(醒言)으로 구성되어 있다. 취언이란 ‘헤아려 쓴 말’이라는 뜻으로, 10편의 중국 고사에 ‘청장평왈(靑莊評曰)’로 시작되는 평론이 있다. 질언이란 ‘딱 잘라 한 말’이라는 뜻으로, 대구(對句)로 이루어진 120여 항의 격언을 모아 놓은 것이며, 성언이란 ‘깨우치는 말’이라는 뜻으로 100여 편의 국내 야담(野談)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의의와 평가]

노론계에 속하면서도 북학파 실학자들과 교유하며 북학 사상에 앞장섰던 성대중의 학문과 문학 경향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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