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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경이 꿈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沃川夜夢 到抱川臥龍潭)」[옥천에서 밤에 꿈을 꿨는데 포천의 와룡담에 도달했네]은 조선 후기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몸은 옥천에 있지만 꿈속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臥龍潭)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와룡담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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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조경(趙絅)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 조경[1586~1669]은 본관이 한양(漢陽), 호가 용주(龍洲)이다. 1612년(광해군 4)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난정(亂政)으로 대과를 단념, 거창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고창 현감, 경상 도사에 계속하여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다가 이듬해 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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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명보(明甫), 호는 한음(漢陰)·쌍송(雙松)·포옹산인(抱雍散人). 증조할아버지는 부사과 이수충(李守忠)이며, 할아버지는 증 좌찬성 이진경(李振慶)이고, 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이민성(李民聖)이다. 어머니는 현량 유예선(柳禮善)의 딸이고, 부인은 영의정 이산해(李山海)의 딸이다. 이덕형(李德馨)[1561~1613]은 지금의 경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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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조경(趙絅)[1586~1669]은 포천 지역 한양 조씨(漢陽趙氏) 집성촌을 구체화한 인물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이후 복구하지 못한 사당을 선영 아래에 건립하여 세거의 터전을 마련하였다. 또한 그 옆으로 관거재(寬居齋)란 가숙(家塾)을 지어 자제를 교육하는 장소로 삼았다. 본관은 한양(漢陽). 자는 일장(日章), 호는 용주(龍洲), 주봉(柱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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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4년 조경이, 1652년에 완성된 포천의 한양 조씨 사당에 대하여 지은 기문.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抱川加次里先壟下祠堂記)」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위치한 한양 조씨 용주(龍洲) 조경(趙絅)[1576~1669] 가문의 사당에 대한 기문(記文)이다. 조경이 주도하여 사당이 완성된 것은 1652년(효종 2)이고, 「포천가차리 선롱하사당기」는 조경이 1664년(현종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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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7년 조경이 포천 기곡의 봉화가 타오르는 것을 보고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포천기곡봉화(抱川機谷烽火)」는 1657년(효종 8) 71세 때 포천에 은거한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포천 기곡에서 봉화가 밤마다 타오르는 것을 보고 느낀 감회를 노래한 한시이다. 조경은 자(字)가 일장(日章)이고, 호(號)는 용주, 주봉(柱峯), 간옹(鬝翁) 등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