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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공덕원(功德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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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는 광릉의 수호 및 관리를 담당하던 관직. 수호군(守護軍)은 수묘군(守墓軍)이라고도 하였는데,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 치장(治葬)에 의하면, 각 능마다 능지기 2명, 수호군 100호를 설치하여 관리를 담당하게 하였다. 또 절일(節日)에 따른 치제(致祭)가 제대로 수행되도록 수직(守直)을 설치하고, 능묘 가까운 곳을 능묘의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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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조선 시대 태봉 터. 태봉(胎封)은 태실(胎室)·태봉(胎峰)·태봉(台峰)·태묘(胎墓)·태장봉(胎藏峰)·태산(胎山)·태뫼 등으로 불리는데, 산모가 태아를 출산한 후 나오는 태반(胎盤)을 묻는 장소를 의미한다. 왕실의 태봉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하며,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태 항아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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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이 재위 16년[757] 지방 지배 체제의 정비 목적으로 군현제 개편을 시행하면서 고구려 지배 당시의 지명인 양골현을 동음현(洞陰縣)으로 변경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685년(신문왕 5) 9주 5소경을 편제하면서 한주[또는 한산주]에 속하였고, 757년 군현 개편에 따라 동음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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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벽탄석원(碧呑石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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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된 내지 봉수. 포천의 봉수는 전국 5로의 주요 선로 중에서 두만강 부근인 함경북도 경흥 서수라(西水羅) 우암(牛巖)을 기점으로 서울 목멱산에 도달하는 동북쪽 직봉에 속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의 포천현에는 독산(禿山) 또는 독현(禿峴), 잉읍점(仍邑岾) 또는 잉읍현(仍邑峴) 봉수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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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학자이자 문신.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자수(自修), 호는 독곡(獨谷). 아버지는 부원군 성여완(成汝完)이다. 성석린(成石璘)[1338~1423]은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급제하여 국자 학유(國子學諭)에 제수되었다. 사관(史官)으로 있을 때 이제현(李齊賢)이 국사를 편수하면서 그의 재능을 인정하여 항상 글을 짓게 하였다. 예문관의 공봉(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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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성석린의 묘. 성석린(成石璘)[1338~1423]은 고려 후기 및 조선 초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자수(自修)이며, 호는 독곡(獨谷)이다. 할아버지는 판도총랑(版圖摠郞) 성군미(成君美)이고, 아버지는 창녕 부원군(昌寧府院君) 성여완(成汝完)이며, 어머니는 밀직사 지신사(密直司知申事) 나천부(羅天富)의 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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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 중 하나로, 안기역(安奇驛)은 포천 지역에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포천현 역원조(驛院條)에는 “안기역은 현 북쪽 4리에 있다[安奇驛 在縣北四里]”라고 하였다. 또한 윤지(尹漬)가 중수하자 성현(成俔)이 이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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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한 포천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 개관. 포천 지역은 한탄강을 따라 서북 지역 또는 한강 하류 지역과 연결되고, 추가령 지구대를 따라 동북쪽으로 주민의 이동로가 펼쳐져 있다. 사방으로 교차적인 위치에 있어서 문화적인 교류가 많았다는 것이 선사 시대의 문화상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포천의 선사 문화는 한강의 상류 지역과 서해의 도서 지역, 동해안의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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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영평현(永平縣)은 1393년(태조 2) 설치된 행정 구역으로, 이후 계속 유지되다가 1618년(광해군 10)에 포천현과 합하여 영흥대도호부가 되었다. 1629년(인조 7) 두 지역이 분리되어 영평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영평현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3년에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앞서 고려 후기 원종 때 영흥현(永興縣)이라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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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지역에 묘가 있는 조선 전기 무신. 본관은 양성(陽城). 증조할아버지는 첨의평리 이나해(李那海)이고 할아버지는 시중 이춘부(李春富)이다. 아버지는 개성 유후 정절공(靖節公) 이옥(李沃)이고, 어머니는 찬성사 홍상재(洪尙載)의 딸이다. 부인은 서보(徐補)의 딸인 이천 서씨(利川徐氏)로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다. 아들은 이조 좌랑 이휘(李徽)이다. 첫째 딸은 예문관 직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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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단보(端父). 증조할아버지는 문하평리를 지낸 이인민(李仁敏)이고, 할아버지는 영의정을 지낸 이직(李稷)이다. 아버지는 한성 판윤을 지낸 이사후(李師厚)이며, 아들은 이집(李諿)이다. 부인은 태종 이방원(李芳遠)과 소빈 노씨(昭嬪盧氏) 사이에서 태어난 숙혜 옹주(淑惠翁主)이다. 이정녕(李正寧)[1411~1455]은 평소에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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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포천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 고려 초 이후 중앙 집권 체제에 의한 통치권의 범위가 점차 지방으로 확대되면서 중앙의 관원을 파견하지 못하던 속군현(屬郡縣)과 향(鄕)·소(所)·부곡(部曲) 등 말단 지방 행정 단위에 1106년(예종 1)부터 현령보다 낮은 지방관인 감무(監務)를 파견하였다. 조선 건국 이후 1413년(태종 13) 감무를 현감으로 개칭할 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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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포천 지역에 파견된 지방관. 983년(성종 2) 12목(牧) 체제의 지방 제도를 시행하던 고려가 995년(성종 5) 지방 세력의 통제와 국방력 강화를 위해 12주에 절도사를 두고, 이보다 작은 주에 도단련사(都團練使)·단련사(團練使)·자사(刺使)·방어사(防禦使)를 설치하였다. 당나라의 군사적인 절도사 체제의 외관제 구축을 모방하여 설치한 것이다. 포주 단련사(抱州團練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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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2003년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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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에 위치한 도농 복합 도시. 포천은 본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으로서 757년(경덕왕 16)에 견성군(堅城郡)으로, 고려 초기에 포주(抱州)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423년(태종 13)에 지방 군현제 정비와 함께 포천으로 고쳐지면서 현이 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포천군이 되었으며, 2003년에 도농 복합 시로 승격하였다. 행정 구역은 14개 읍·면·동[1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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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