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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연꽃·국화·대나무를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간포천성주 걸련국죽삼절(簡抱川城主 乞蓮菊竹三絶)」은 포천 출신으로 조선 전기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당시 포천 현감의 요구에 응해 연꽃·국화·대나무 등의 사물에 대하여 읊은 한시이다. 「간포천성주 걸련국죽삼절」은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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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이남규가 포천을 거쳐 영흥 부사로 부임하는 노정과 영흥에서 겪은 일을 기록한 일기. 「갑오일기(甲午日記)」는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1894년[甲午年] 음력 5월 6일부터 12월 말일까지 영흥 부사(永興府使)가 되어 임지(任地)에서 겪은 일들을 일기체로 기록한 글이다. 「갑오일기」는 이남규의 문집인 『수당집(修堂集)』에 실려 있다. 「갑오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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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고기잡이를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관어(觀漁)」는 포천 출신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어부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보고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관어」는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관어」라는 제목 밑에는 “당시 포천 주수(主守)[수령]가 사령을 시켜 술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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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유학자 김평묵이 포천의 금수정과 창옥병을 소재로 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관영평금수정지창옥병(觀永平金水亭至蒼玉屛)」[영평의 금수정을 보고 창옥병에 이르러서]은 포천 출신의 유학자(儒學者) 중암(重庵)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영평 8경 가운데 두 곳인 금수정(金水亭)과 창옥병(蒼玉屛)을 보고 지은 한시이다. 「관영평금수정지창옥병」은 『중암집(重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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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년 조선 후기의 문신 이익이 포천 지역의 수해에 대해서 저술한 기문. 「괴풍폭우(恠風暴雨)」는 1752년 포천에서 이상한 바람과 큰비로 물난리가 나자 성호(星湖) 이익(李瀷)[1681~1763]이 이때 입은 수해(水害)에 대해서 저술한 글이다. 「괴풍폭우」는 『성호사설(星湖僿說)』 권(卷) 3의 「천지문(天地門)」에 수록되어 있다. 「천지문」은 총 223항목이며, 천문(天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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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년 조태억이 포천 현감 구정명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구포천만(具抱川輓)」은 조선 후기의 문신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1714년 3월 10일 포천 현감(抱川縣監)을 제수 받고 재임 중에 사망[1714년 11월]한 구정명(具鼎明)을 애도하며 지은 한시이다. 「구포천만」은 조태억의 문집 『겸재집(謙齋集)』 권(卷) 11에 수록되어 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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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포천 출신의 금산 군수 권종(權悰)에게 시호를 추증한 문서. 「권종 시호 교지(權悰諡號敎旨)」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금산 군수(錦山郡守)로서 금산을 방어하다가 왜병에게 죽임을 당한 권종[?~1592]의 공덕을 칭송하여 1832년에 ‘충민(忠愍)’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려 후손에게 주었다는 문서이다. 시호란 사람의 업적이나 학문 등을 고려하여 일정한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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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금수정을 소재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금수정金水亭」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금수정을 보고 느낀 정취를 적은 한시이다. 금수정은 현재의 장소에 김명리가 우두정(牛頭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는데, 얼마 후 이 정자를 양사언에게 주었고 양사언은 정자 이름을 현재의 금수정으로 고쳤다고 한다. 정자 현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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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문인 양사언이 금주산을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금주산(金柱山)」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포천 영중면과 일동면 사이에 있는 금주산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금주산」은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경기도 포천시 영중면에 위치한 금주산[568m]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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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8년 이현석이 이수광의 시 「숙포천백형댁」의 운자를 따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남산관 차숙포천운(南山館 次宿抱川韻)」은 1698년 이현석(李玄錫)[1647~1703]이 함경도 안변 부사(安邊府使)에 임명되어 임지(任地)로 가는 도중에 포천현의 관사(館舍)로 향하며, 증조할아버지인 지봉(芝峯) 이수광(李睟光)[1563~1628]이 지은 「숙포천백형댁(宿抱川白兄宅)」[포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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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4년 최항이, 세조가 탔던 말 12마리의 그림 가운데 포천 왕방산을 배경으로 그린 다섯 번째 말 그림을 소재로 지은 한시. 「능공곡(凌空鵠)」은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몸소 탔던 말 12마리를 당(唐) 나라 고사(故事)를 모방하여 그리게 하였는데, 최항(崔恒)[1409~1474]이 말 그림을 기리며 지은 「십이준도찬(十二駿圖贊)」에 실려 있는 5번째 준마(駿馬) 능공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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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포천 출신 최익현(崔益鉉)이 포천 군수 박영세(朴永世)에게 보낸 편지. 「답 박 포천(答朴抱川)」[포천 박 군수에게 답한다]은 면암(勉庵) 최익현[1833~1906]이 1895년 11월 25일부터 1898년 9월 10일 사이에 당시 포천 군수였던 박영세에게 보낸 서신이다. 최익현은 1895년 을미개혁으로 인해 단발령(斷髮令)이 공포되자 이에 크게 반발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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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포천 출신의 유학자 최익현(崔益鉉)이 포천의 유생들에게 쓴 편지. 「답 포천 유생(答抱川儒生)」[포천 유생에게 답함]은 포천 출신 면암(勉庵) 최익현[1833~1906]이 1885년(고종 22)에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포천의 유생들에게 보낸 서신이다. 「답 포천 유생」은 최익현의 문집 『면암집(勉庵集)』 권9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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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2년 김창협(金昌協)이 포천 지역에 있는 옥병 서원(玉屛書院)의 사액(賜額)을 청하는 상소문. 「대 영평 유생 청 옥병 서원 사액소(代永平儒生請玉屛書院賜額疏)」는 포천에 연고가 있던 농암(農巖) 김창협[1651~1708]이 영평(永平)의 유생들을 대신하여 옥병 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며 숙종에게 올린 글이다. 김수항(金壽恒)[1629~1689]과 그의 형 김수증(金壽增)[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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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1년 이경석이 금강산을 유람하러 가는 길에 포천에 이르러 조경에게 보낸 칠언 율시의 한시. 「도포천(到抱川)」은 백헌(白軒) 이경석(李景奭)[1595~1671]이 1651년 유배에서 풀려난 후 금강산 유람차 길을 가던 중에 포천에 이르러, 당시 한양 조씨(漢陽趙氏) 가문의 향리(鄕里)인 포천 가채리에 은거하고 있던 일장(日章) 조경(趙絅)에게 지어 보낸 한시이다. 이경석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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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이남규가 포천에 사는 동신선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이건창에게 듣고 지은 전. 「동신선전(董神仙傳)」은 개항기 독립지사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1855~1907]가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1852~1898]에게 들은 ‘동신선(董神仙)’이라는 인물의 독특한 행적을 기록한 글이다. 「동신선전」은 이남규의 문집 『수당집(修堂集)』 권(卷) 8에 수록되어 있다. 「동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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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1년 김창협이 금강산을 유람하기 위해 포천을 지나고 지은 기행문. 「동유기(東遊記)」는 조선 후기의 문신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1651~1708]이 금강산을 유람하려고 길을 떠난 후 포천을 지나고 나서 여행의 감회를 적은 글이다. 「동유기」는 김창협의 문집 『농암집(農巖集)』 권(卷) 23에 수록되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금강산(金剛山)의 명성을 듣고 늘 한번 유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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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년~1747년 사이에 홍양호가 포천 현감 김효대와 함께 운악산 현등사를 유람하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동포천재김여원 형제유현등사(同抱川宰金汝源 兄弟遊懸燈寺)」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1724~1802년]가 1745년부터 1747년까지 당시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였던 여원(汝原) 김효대(金孝大)[1721~1781] 형제와 함께 운악산(雲岳山)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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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인 심육이 포천의 지인인 성보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만침포천성보(輓沈抱川誠甫)」는 조선 후기의 문인 저촌(樗村) 심육(沈錥)[1685~1753]이 포천과 연고가 있는 자(字)를 ‘성보(誠甫)’로 하는 지인(知人)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한시이다. 「만침포천성보」는 심육의 문집 『저촌유고(樗村遺稿)』 권(卷) 6에 수록되어 있다. 시서재복적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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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2년 이준이 포천 현감 허교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만허포천(挽許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신 이준(李埈)[1560~1635]이 1632년(인조 10) 포천 현감(抱川縣監)에 부임하여 1636년(인조 14)까지 재직한 허교(許喬)[1567~1632]의 죽음을 애도하여 지은 한시이다. 「만허포천」은 이준의 문집 『창석집(蒼石集)』가운데 「창석선생속집」권(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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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7년 강원도 암행어사 김홍욱이 포천의 어느 산성을 바라보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망포천산성(望抱川山城)」은 조선 후기의 문신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1602~1654]이 강원도 암행어사로 가는 길에 포천의 어느 산성에 이르러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망포천산성」은 김홍욱의 문집 『학주전집(鶴洲全集)』 권(卷) 1의 「동행록(東行錄)」에 실려 있다. 「동행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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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이덕형이 영평을 지나면서 감회를 적은 칠언 율시의 한시. 「모과영평(暮過永平)」은 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과 기발한 장난과 우정이 얽힌 많은 일화를 남긴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이 해가 질 무렵에 영평 지역을 지나면서 읊은 한시이다. 「모과영평」은 이덕형의 문집 『한음문고(漢陰文稿)』 권(卷) 2에 실려 있다. 관내산천설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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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헌경이 함경도 종성으로 가는 길에 포천에 묵으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모숙포천(暮宿抱川)」은 1751년(영조 27)에서 1755년(영조 31) 사이에 간옹(艮翁) 이헌경(李獻慶)[1719~1791]이 종성 부사(鍾城府使)인 아버지 이제화(李齊華)의 간병 때문에 함경도 종성으로 가는 길에 올라서 날이 저물자 포천에 묵으며 길에서 본 풍경을 적은 한시이다. 「모숙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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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년 김시습이 영평현을 지날 때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모투영평현(暮投永平縣)」은 조선 전기의 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날이 저물자 영평현으로 들어가면서 느낀 감흥을 적은 한시이다. 「모투영평현」은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0에 수록된 「유관동록(游關東錄)」에 수록되어 있다. 「유관동록」은 김시습이 관동(關東)[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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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미인을 소재로 지은 고전 가사. 「미인별곡(美人別曲)」은 포천 출신의 대표적인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어떤 여인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시가의 한 양식인 가사 문학(歌辭文學) 작품이다. 제목에서 ‘미인(美人)’이란 단어는 보통 다른 작자의 작품에서는 임금을 비유하고 있으나, 「미인별곡」에서는 문자 그대로 아름다운 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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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반월산을 소재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반월산(半月山)」은 포천 출신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반월같이 아름다운 형상을 지녔다고 하는 반월산(半月山)의 풍경에 대하여 읊은 한시이다. 반월산은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와 하성북리 경계에 위치해 있다. 「반월산」은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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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양만고가 반월산성을 소재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반월산성(半月山城)」은 양만고(楊萬古)[1574~1654]가 포천의 대표 문화유산인 반월산성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한시이다. 양만고의 자는 도일(道一), 호는 감호(鑑湖), 본관은 청주(淸州)로 봉래(蓬萊) 양사언(梁士彦)[1517~1584]의 아들이다.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후 알성 문과(謁聖文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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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덕무가 포천에 살고 있는 친구 백동좌에게 보낸 한시. 「봉기백양숙포천한거(奉寄白良叔抱川閒居)」는 1757년(영조 33)부터 1764년(영조 40)까지 7년 사이에 이덕무(李德懋)[1741~1793]가 그의 벗이자 처남인 영숙(永叔) 백동수(白東脩)[1743~1816]의 사촌 형제로서 포천에 살고 있는 양숙(良叔) 백동좌(白東佐)에게 보낸 한시이다. 이덕무는 박학한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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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유득공이 「어제석왕사비문」을 받들고, 석왕사로 향하는 길에 포천을 지나며 읊은 오언 율시의 한시. 「봉어제석왕사비문과포천(奉御製釋王寺碑文過抱川)」은 영재(泠齋) 유득공(柳得恭)[1748~1807]이 정조(正祖)가 지은 「어제석왕사비문(御製釋王寺碑文)」을 받들고, 함경도 안변(安邊)의 석왕사(釋王寺)로 향하는 길에 지난날 포천 현감으로 재직[1785(정조 9)~17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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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출신의 이항복이 평소에 겪었거나 전해들은 이야기를 수록한 잡기. 「산가지설(山家之說)」은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의 고민을 명풍수로 이름을 날린 교수(敎授) 박상의(朴尙義)[1538~1621]가 해결해 주었다는 잡기(雜記)이다. 「산가지설」이 실려 있는 「잡기」는 이항복의 문집인 『백사집(白沙集)』 중에서 『백사별집(白沙別集)』 권(卷) 4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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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경이 꿈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에 대해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옥천야몽 도포천와룡담(沃川夜夢 到抱川臥龍潭)」[옥천에서 밤에 꿈을 꿨는데 포천의 와룡담에 도달했네]은 조선 후기 문신 용주(龍洲) 조경(趙絅)[1586~1669]이 몸은 옥천에 있지만 꿈속에서 본 고향 포천의 와룡담(臥龍潭)에 대하여 지은 한시이다. 와룡담이 현재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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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출신의 양사언이 포천 운악산을 찾아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운악산(雲岳山)」은 조선 전기의 문인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1517~1584]이 경기도 포천의 명산 운악산을 찾아가서 느낀 당시의 감흥을 표현한 한시이다. 「운악산」은 양사언의 시집 『봉래시집(蓬萊詩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양사언은 포천에서 태어나고 묻힌 포천의 인물로서, ‘영평 8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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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의현이 포천의 효행과 우애로 이름난 감찰 유자미부터 그의 5세 후손까지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 「유감찰오세전(柳監察五世傳)」은 조선 후기의 문신 도곡(陶谷) 이의현(李宜顯)[1669~1745]이 문화 유씨(文化柳氏) 감찰(監察) 유자미(柳自湄)와 그의 5세(世) 후손들까지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한 전기(傳記)이다. 「유감찰오세전」은 이의현의 문집 『도곡집(陶谷集)』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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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1년 정온이 경성 판관으로 좌천되어 부임하는 길에 포천 양문역에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유양문역우음(留梁文驛偶吟)」은 1611년에 조선 후기의 문신 동계(桐溪) 정온(鄭蘊)[1569~1641]이 경성 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左遷)되어 임지로 나아가는 길에 양문역에서 머물며 우연히 읊은 한시이다. 1611년 43세였던 정온이 당시 광해군이 임진왜란 후 행궁(行宮)인 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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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기화가 포천의 운악산을 유람하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유운악산(遊雲岳山)」은 조선 전기의 승려 함허(涵虛) 기화(己和)[1376~1433]가 포천현에서 동쪽으로 12㎞ 정도 떨어진 지점의 운악산(雲岳山)을 유람하며 지은 한시이다. 기화는 법호가 득통(得通)이고, 당호(堂號)는 함허이며, 자는 수이(守伊)이다. 속성(俗姓)은 유(劉)이며, 충주 출생이다. 21세에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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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남효온이 포천 출신의 사육신 유응부에 대하여 기록한 전. 「유응부전(兪應孚傳)」은 조선 전기의 문인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1454~1492]이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서 출생한 사육신 유응부(兪應孚)[?~1456]에 관하여 기록한 전(傳)이다. 「유응부전」은 남효온의 문집인 『추강집(秋江集)』 권(卷) 8의 속록(續錄) 전(傳) 가운데 「사육신전」에 실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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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제가가 포천의 솔재에서 현등산을 바라보며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유포천송치 망현등산(踰抱川松峙望懸燈山)」은 조선 후기의 문신 초정(楚亭) 박제가(朴齊家)[1750~1805]가 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명덕리와 군내면 상성북리를 이어주는 솔재를 넘어가다가 바라보이는 현등산(懸燈山)[운악산]의 풍광을 묘사한 한시이다. 박제가는 박학한 학자이자 동시에 이덕무(李德懋)[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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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9년 9월 22일 김성일이 함경도로 가는 길에 포천에 묵을 때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이십이일 모우저포천유숙(二十二日冒雨抵抱川留宿)」은 1579년(선조 12) 9월 22일 김성일(金誠一)[1538~1593]이 함경도로 가는 도중에 비를 피하고자 수의로 비를 막고 포천의 객사에 묵을 때에 지은 한시이다. 「이십이일 모우저포천유숙」은 『학봉집(鶴峯集)』 권(卷) 1의 「북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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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채제공이 삼수 부사로 좌천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 포천에서 지은 오언율의 한시. 「이질유경수도포천(李姪儒慶隨到抱川)」은 1768년(영조 44) 조선 후기의 문신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1720~1799]이 함경도 삼수 부사(三水府使)로 좌천되어 임지로 가는 도중에 배웅을 하던 조카 이유경과 헤어지며 포천에서 지은 한시이다. 「이질유경수도포천」은 채제공의 문집 『번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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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년 이지함(李之函)이 포천 현감 시절에 올린 상소문. 「이 포천 시 상소(莅抱川時上疏)」[포천 현감 시절에 올린 상소문]는 고을이 빈약하여 곡식이 모자라자 해읍(海邑)의 어량(漁梁)[어장]을 몇 번으로 나누어 받아 곡식을 사서 빈약한 재정을 보충하게 해 달라고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이 선조에게 올리는 글이다. 그러나 상소가 받아들이지 않자 이지함은 본디 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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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3월 26일~27일 사이에 조복양이 영릉에서 포천의 이 선생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장사영릉 차포천이군운(將事寧陵次抱川李君韻)」은 1668년(현종 9) 3월 26일부터 27일까지 당시의 예조 판서(禮曹判書) 조복양(趙復陽)[1609~1671]이 효종(孝宗)의 능인 경기도 여주 영릉(寧陵)에 석물(石物)을 개수하고 제사를 드리러 가서 포천의 이 선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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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종태가 포천의 선영에서 읊은 칠언 율시의 한시. 「재포천묘하(在抱川墓下)」는 조선 후기 문신 만정(晩靜) 서종태(徐宗泰)[1652~1719]가 경기도 포천시 설운동 산1-14번지에 위치한 선영(先塋)[조상의 무덤]을 찾아가서 신주를 묻고 읊은 한시이다. 「재포천묘하」는 서종태의 문집 『만정당집(晚靜堂集)』 권(卷) 3에 수록되어 있다. 「재포천묘하」[포천의 선영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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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 포천에서 이민서(李敏敍)가 대사헌과 대제학의 사직을 청하는 상소문. 「재포천사도헌문형소(在抱川辭都憲文衡疏)」는 서하(西河) 이민서[1633~1688]가 1685년 2월 휴가를 빌어 부친의 성묘를 위해 포천에 있을 때 신병을 이유로 도헌(都憲)[대사헌]과 문형(文衡)[대제학]의 사직을 숙종에게 요청하는 글이다. 이민서는 영의정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의 셋째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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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호민이 선영을 포천의 꽃골로 옮겼지만 미처 옮기지 못한 부인의 무덤을 지켜 준 산객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칠언 율시의 한시. 「제종상인축병소서(題宗上人軸幷小序)」는 조선 후기 이호민(李好閔)[1553~1634]이 조상의 선영(先塋)을 포천의 꽃골[花谷]로 옮겼지만 미처 옮기지 못하고 홀로 남은 부인의 무덤 옆에 암자를 짓고 시묘살이를 해 준 산객(山客)에게 감사를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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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허적(許𥛚)이 포천의 객사에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제포천객사(題抱川客舍)」는 조선 시대의 문신 수색(水色) 허적[1563~1640]이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포천의 객사(客舍)에서 머물며 지은 한시이다. 「제포천객사」는 허적의 문집 『수색집(水色集)』 권(卷) 2에 실려 있다. 『수색집』은 8권 4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권수에 재종제(再從弟) 허균(許筠)[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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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8년 이항복이 북청으로 유배를 가는 길에 포천 조카들의 배웅을 받고 이별하면서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조발금성현포천 제질등사귀(早發金城縣抱川諸姪等辭歸)」는 1618년(광해군 10) 1월 15일에서 1월 16일 사이 백사(白沙)·오성(鰲城)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당시 인목대비 폐위론에 반대하자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함경도 북청(北靑)으로 유배를 가는 도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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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조병현이 포천을 향해 아침에 출발하며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조발향포천(早發向抱川)」은 1819년(순조 19) 조선 후기의 문신 성재(成齋) 조병현(趙秉鉉)[1791~1849]이 금강산(金剛山)을 유람하러 가는 길에 송우리에서 포천을 향해 아침 일찍이 출발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조발향포천」은 조병현의 문집 『성재집(成齋集)』 권(卷) 4에 수록되어 있다. 권4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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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허전이 진사시에 새로 급제한 포천의 조석룡에게 보낸 한시. 「증신방진사조국명 귀포천(贈新榜進士趙國明歸抱川)」은 1842년(헌종 8) 포천 출신으로 조선 후기의 문신 허전(許傳)[1797~1886]이 포천 지역에서 진사시에 합격한 조국명(趙國明)[조석룡(趙錫龍)]에게 보낸 한시이다. 「증신방진사조국명 귀포천」은 『성재집(性齋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증신방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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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허목이 영평현의 백운산에 유람을 가는 정 선생에게 보낸 한시. 「증정군유백운산수(贈鄭君遊白雲山水)」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미수(尾叟) 허목(許穆)[1595~1682]이 영평현(永平縣)에서 동쪽으로 24㎞ 정도 떨어진 지점의 백운산(白雲山)으로 유람을 가는 정(鄭) 선생에게 보낸 한시이다. 「증정군유백운산수」는 허목의 문집 『기언(記言)』 권(卷) 63에 수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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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태억이 포천의 첨지 정철선에게 보낸 오언 율시의 한시. 「증포천향로정첨지(贈抱川鄕老鄭僉知)」는 조선 후기의 문신 겸재(謙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포천의 첨지(僉知) 정철선(鄭哲先)에게 준 한시이다. 조태억은 1698년(숙종 24) 4월에 모친상을 당해서 포천의 독곡(獨谷)에 장사를 지냈다. 조태억과 포천과의 관계는 이로부터 비롯된 듯하다. 「증포천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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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년 강백년이 포천 현감을 지낸 심일준의 「백사정」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차심포천 제백사정운(次沈抱川題白沙亭韻)」은 1663년(현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포천 현감(抱川縣監)을 지낸 심일준(沈日遵)[1590~?]의 「백사정(白沙亭)」이라는 시에 차운(次韻)하여 지은 한시이다. 심일준의 본관은 풍산(豊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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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시습이 한양의 벗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포천현에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현(抱川縣)」는 조선 전기의 문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 어느 봄날 벗을 만나러 한양으로 향하는 길에 포천현의 모습을 보고 심회를 읊은 한시이다. 「포천현」은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梅月堂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폐읍민거소(弊邑民居少)[피폐된 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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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윤순지가 포천의 관사에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포천현관만제(抱川縣館謾題)」는 조선 후기의 문신 행명(涬溟) 윤순지(尹順之)[1591~1666]가 포천현의 관사에서 읊은 한시이다. 「포천현관만제」는 윤순지의 시집 『행명재시집(涬溟齋詩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권 1의 시는 1627년(인조 5) 부친 윤훤(尹暄)[1573~1627]이 정묘호란 당시 평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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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곽열이 포천의 관사에서 명나라로 떠났던 사절단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현영명류대작(抱川縣迎命留待作)」은 조선 중기의 문신 곽열(郭說)[1548~1630]이 포천의 관사(館舍)에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는 사절단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면서 지은 한시이다. 「포천현영명류대작」은 곽열의 문집 『서포집(西浦集)』 권(卷) 4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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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서영보가 포천의 집에서 송재도를 만난 것을 기리며 지은 칠언 절구의 한시. 「포천현재 우지계송장(抱川縣齋遇芝溪宋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죽석(竹石) 서영보(徐榮輔)[1759~1816]가 포천의 집에서 지계(芝溪) 송재도(宋載道)를 만난 것을 기리며 지은 한시이다. 「포천현재 우지계송장」은 서영보의 문집 『죽석관유집(竹石館遺集)』책(冊) 1에 실려 있다. 선생안발사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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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조태억이 한식날에 선영이 있는 포천의 묘사에서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한식일재포천묘사(寒食日在抱川墓舍)」는 조선 후기 문신 겸재(兼齋) 조태억(趙泰億)[1675~1728]이 한식날에 선영(先塋)이 있는 포천의 묘사(墓舍)에서 정희교(鄭希僑)와 더불어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고 금수정(金水亭)을 방문하면서 지은 한시이다. 조태억은 1698년(숙종 24) 4월에 모친상을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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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8년 오재순이 금강산 유람을 위해 포천의 송우, 만세교, 백로주 등을 지나면서 쓴 기행문. 「해산일기(海山日記)」는 1748년(영조 24) 조선 후기의 문신 순암(醇庵) 오재순(吳載純)[1727~1792]이 금강산(金剛山) 유람을 위해 포천을 지나며 송우(松隅), 만세교(萬歲橋), 백로주(白鷺洲) 등을 들리며 기록한 기행문이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에서 금강산 유람을 하고 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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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5년 강백년이 임지로 가던 길에 포천에서 친구 박선응의 무덤을 보고 읊은 칠언 절구의 한시. 「행도포천로중(行到抱川路中)」은 1655년(효종 6년) 조선 후기의 문신 설봉(雪峯) 강백년(姜栢年)[1603~1681]이 함경도 종성 부사(鍾城府使)로 임명되어 임지로 향하는 도중에 포천의 길가에서 친구 박선응(朴善應)의 무덤을 보고 느낀 감회를 읊은 한시이다. 「행도포천로중」은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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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3년 박장원이 포천현에 있는 안기역에 도착하여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행도포천안기역(行到抱川安期驛)」은 1653년(효종 4) 조선 후기의 문신 구당(久堂) 박장원(朴長遠)[1612~1671]이 포천현의 안기역(安期驛)에 도착하여 경상도 흥해(興海)로 정배(定配)한다는 임금의 명을 듣고 지은 한시이다. 「행도포천안기역」은 박장원의 문집 『구당집(久堂集)』 권(卷) 5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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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2년 김창업이 포천을 향해 가는 도중에 지은 칠언 율시의 한시. 「향포천도중(向抱川道中)」은 1702년(숙종 28) 조선 후기의 문신 노가재(老稼齋)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포천을 향하여 가는 길에 지은 한시이다. 「향포천도중」은 김창업의 문집 『노가재집(老稼齋集)』 권(卷) 2에 수록되어 있다. 차로평생주기순(此路平生走幾廵)[이 길을 평생 동안 몇 번이나 다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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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이항복이 포천의 운악산 현등사를 소재로 지은 오언 율시의 한시. 「현등사(懸登寺)」는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1561~1613]과 기발한 장난과 우정이 얽힌 많은 일화를 남긴 오성(鰲城)·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이 포천 운악산(雲岳山)의 현등사에 대하여 읊은 한시이다. 「현등사」는 이항복의 문집 『백사집(白沙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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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5년 성해응이 이항복을 모신 화산 서원의 중수를 기념하여 지은 기문. 「화산 서원 중수기(花山書院重修記)」는 1825년(순조 25)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1760~1839]이 이항복(李恒福)[1556~1618]을 모신 화산 서원(花山書院)을 손질하여 고친 것을 기념하여 지은 중수기(重修記)이다. 화산 서원은 1720년(숙종 46)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 서원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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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평에 거주했던 이서구가 화적연을 소재로 하여 지은 오언 고시의 한시. 「화적연(禾積淵)」은 영평에 거주하였던 조선 후기의 문신 척재(惕齋) 이서구(李書九)[1754~1825]가 ‘영평 8경’ 중에 하나로서 영평현의 사람들이 기우제를 지내던 화적연을 보고 지은 한시이다. 이서구는 박학한 학자이자 동시에, 이덕무(李德懋)[1741~1793], 박제가(朴齊家)[17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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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4월 3일 포천 출신의 유학자 최익현이 친구들과 금강산 유람 중에 들린 화적연을 소재로 하여 지은 한시. 「화적연(禾積淵)」은 1882년(고종 19) 4월 3일에 포천 출신으로 개항기의 애국지사인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1833~1906]이 여러 친구들과 함께 금강산(金剛山)을 향하여 떠나는 길에 화적연에 들러 지은 한시이다. 「화적연」은 최익현의 문집 『면암집(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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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박세채가 새벽에 포천을 떠나며 지은 오언 절구의 한시. 「효발포천(曉發抱川)」은 조선 후기의 문신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1631~1695]가 길을 재촉하느라 새벽에 포천을 떠나며 지은 한시이다. 「효발포천」은 박세채의 문집 『남계집(南溪集)』 외집(外集) 권(卷) 1에 수록되어 있다. 외집 권 1에는 시(詩)와 소(疏)가 실려 있다. 시는 170여 수가 연대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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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김평묵이 조상의의 처 함평 이씨의 효행으로 받은 정려에 대하여 지은 기. 「효부 함평 이씨 정려기」는 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유학자 중암(重菴) 김평묵(金平黙)[1819~1891]이 1816년(순조 16) 조상의(趙尙義)의 처 함평 이씨의 효행(孝行)에 나라에서 내린 정려(旌閭)에 대하여 지은 기(記)이다. 효부 함평 이씨의 효행은 포천의 유학(幼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