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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거사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기록에 따르면 포천 지역에는 예로부터 도자기를 생산하는 곳이 여럿 있었으나 대부분 그 위치가 확인되지 않는다. 거사리 가마터는 지금까지 발견된 포천 지역의 몇몇 도자기 생산 시설 중 하나이다. 포천시 영중면 거사리에는 금화봉이 솟아 있는데, 그 북쪽에 사기막골이라는 자연 마을이 있다. 거사리 가마터는 이곳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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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고일리 절터는 포천시 신북면 고일리 116번지에 있다. 죽엽산 정상부 북서쪽에 위치한다. 1996년 9월부터 1998년 9월까지 단국대학교 사학과에서 포천시 신북면 고일 2리에 위치한 성석린 선생 묘(成石璘先生墓) 입구, 텃골과 방축골 사이 인삼 경작지 두 곳의 절터를 발굴 조사하였다. 성석린 선생 묘 입구에 위치한 절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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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터. 구읍리 관아 터는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군내면사무소가 관아 터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구읍리 관아 터는 군내면사무소 맞은편 평탄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반월산성 남쪽의 포천 들판이 조망되는 지형으로 현재는 경작지로 활용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 530번지 일대이다. 구읍리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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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구읍리에 있는 고려 전기의 절터. 구읍리 절터의 포천 구읍리 석불 입상(抱川舊邑里石佛立像)은 1석의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다. 머리 정상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솟아 있다. 상호는 원만한 편으로 눈·코·입 등이 표현되었으나, 인위적으로 파손된 흔적이 역력하다. 양쪽 귀는 길게 흘러 어깨에 닿았고,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 약간 남아 있다. 어깨는 당당하여 상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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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 5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군자동 사기점 밭 가마터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 5리에서 창수면사무소 쪽으로 진행한 뒤 사기막골로 들어가는 작은 길을 따라 골짜기로 150m 정도 가면 낮은 언덕에 위치한다. 동북향의 낮은 언덕의 남서 경사면을 이용하여 길게 조성되었다. 포천시 창수면 주원 5리 군자동 마을에 있다. 군자동 사기점 밭 가마터는 작은 길을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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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금주리에 있는 조선 시대 태봉 터. 태봉(胎封)은 태실(胎室)·태봉(胎峰)·태봉(台峰)·태묘(胎墓)·태장봉(胎藏峰)·태산(胎山)·태뫼 등으로 불리는데, 산모가 태아를 출산한 후 나오는 태반(胎盤)을 묻는 장소를 의미한다. 왕실의 태봉은 왕자·왕녀의 태반을 매장하는 장소를 말하며, 태반을 항아리에 보관한 후 미리 정해진 태봉에 태실(胎室)을 조성하고 태 항아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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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금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이는 절터. 금현리 절터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한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다. 다만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기록인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 “금현리의 서남쪽 약 4정(町)[400m]에 있다. 전부 경지화되어 있다. 죽엽산의 북쪽 기슭에 있다.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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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 2리에 있는 조선 후기 흑유자 가마터. 흑유자(黑釉磁)는 유약에 다량의 철분이 포함되어 있어 도자기의 표면이 흑색이나 암갈색을 띠는데, 수량은 적으나 고려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제작되어 왔다. 흑유자가 출토된 대표적인 가마터는 조선 전기의 공주 학봉리, 진해 두동리, 고창 용산리, 장성 추암리 등이 있다. 조선 후기에는 울산 상삼정리,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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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에 있는 조선 후기 절터. 길명리 절터는 금주산 동쪽의 좁은 계곡부인 일명 ‘절골’에 위치하고 있다. 제2355부대 301부대 주둔지 북동쪽 사격 훈련장 내 계곡 부분 좁은 평지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 산198번지이다. 길명리 절터의 규모, 형태, 수습 유물의 양상을 종합해 볼 때 18세기 이후 짧은 기간 경영되었던 소규모 암자 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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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우금리에 있는 현대 6·25 전쟁 당시 육사 생도 대대가 방어 전투를 벌인 곳. 내촌 전투는 6·25 전쟁 초기 육사 생도 대대가 내촌 일대에 방어 진지를 편성하여 북한군을 저지하였던 전투이다. 육사 생도 대대는 372고지에서 철야 경계 태세를 갖추고 진지 작업을 하였다. 대대는 교육을 받은 부대로 주진지와 예비 진지 및 보조 진지까지 구축하면서 사계 청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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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진목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넙재 봉수는 기록상에 보이는 잉읍현(芿邑峴) 봉수로 여겨진다. 독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남양주에 있는 대이산[한이산] 봉수로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이 신호는 다시 아차산 봉수를 거쳐 최종지인 목멱산[남산] 봉수로까지 통하였다. 넙재 봉수 터는 포천시 가산면에서 내촌면으로 통하는 지방도 325호선의 길목에 있는 큰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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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던 조선 시대의 관아 터. 도감(都監)이란 고려 및 조선 시대에 나라의 일이 있을 때 임시로 설치하던 관아를 가리키며, 훈련도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도감 터 위쪽에는 문화 유씨(文化柳氏)의 묘가 있었으나, 포천시 일동면 길명리로 이전하였으며 묘비는 원래 없었다고 한다.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의 향적산 남쪽 아래에 있는 저수지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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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 3리에 있던 조선 후기 가마터. 옛날부터 기와를 굽던 곳이라고 하여 도평리 가마터가 있는 곳을 ‘점말[점촌(店村)·(粘村)]’이라고 부른다. 점말의 ‘점(粘)’은 기와를 굽는 원료가 되는 찰흙을 의미한다. 최근에 도로가 확장·포장되면서 완형(完形)으로 남아 있던 가마터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지금은 가마의 윗부분과 흙을 다지고 모래를 깐 요상(窯床)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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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통일 신라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도평리 사지 또는 약사지(藥寺址)라고도 한다. 통일 신라 말 또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었다가 조선 시대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의 이름이나 창건 연대, 폐사 기록 등이 전혀 전하지 않는 절터이다. 다만 인근의 지명에 ‘약사골’, ‘약사령’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전하는 바대로 ‘약사(藥寺)’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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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 1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독산 봉수 터는 ‘봉화뚝’이라고도 불린다. 독산(禿山) 정상에는 약 2,644.63㎡[800평]의 대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산등성이부터 흙으로 쌓은 단을 형성하여 정상부를 확장하였다. 이곳에서는 포천 시내와 반월산성(半月山城), 신북면 일대가 잘 조망된다. 독산 봉수 터는 정상부의 동쪽에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 포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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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노곡리에 있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이 독수리 유격대를 창설한 곳. 독수리 유격대 창설지는 1950년 11월 포천 노곡리 일대 주민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독수리 유격대가 만들어진 곳이다. 독수리 유격대는 1950년 6월 북한군의 남침 직후 포천 노곡리 일대에서 당시 대한 청년단 간부인 최종성과 최종철 형제를 주축으로 모두 63명의 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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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에 있는 1950년 국군 제9연대가 북한군의 도하를 저지하였던 곳.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4시간 동안 홀로 싸우고 있었고, 전방의 분산 병력을 수습하면서 북만세의 급편 방어 진지를 고수하고 있었다. 제9연대 주력은 2대대를 지원하기 위해 6월 25일 아침 일찍 주둔지를 출발하여 북상하였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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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무봉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서울에서 전개된 3·1 운동 소식은 곧바로 포천 지역에 알려졌다. 3월 13일 포천 공립 보통학교 학생들은 일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서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러한 학생들의 시위는 포천 전 지역에 영향을 주어 3월 24일 영중면 영평리와 소흘면 송우리에서 본격적인 대중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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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무봉리 절터는 향적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러 문헌에 “향적사(香積寺) 재 향적산(香積山)”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곳이 향적사의 옛터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국 여지지(東國輿地誌)』에서 사찰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데 비해 『경기 읍지(京畿邑誌)』와 『견성지(堅城志)』에는 “금무(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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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남북국 시대에서 조선 후기 성터. 보가산 성지(保架山城址)는 일명 보개산성(寶蓋山城)이라고도 하는데, 보가산성(保架山城)이란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의 북벽과 서벽은 자연적인 지형에 일부 석축을 가하고 북벽과 동벽은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산성이다. 산성 서쪽에는 해발 877m의 지장봉(地藏峰)·화인봉(花人峰)·북대(北臺)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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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사직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국군 제9연대 2대대가 북한군을 맞아 전투를 수행한 곳.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 제9연대 2대대는 포천시 일동면 추동리~사직리 일대에서 경계하던 중에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제2대대는 6중대와 7중대를 전방 경계 지대에 배치하고 있었으나 전투가 여의치 않자 적의 공격을 받으면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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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상선암 터에 대한 역사 기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사상가인 미수(尾叟) 허목(許穆)[1595~1682]의 문집인 『기언(記言)』 권(卷)27 산천(山川)에 실린 기행문 「백운산(白雲山)」에 “상선암은 산중 바위로 이루어진 20리 골짜기 안에 위치하는데 산길이 끝나는 깊은 계곡에 위치한다. 이름(頤凜)이 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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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지역에서 최초로 의병 활동이 일어난 곳. 1907년 9월 20일 오전 3시경, 포천군 외면 상송우리에 의병 약 100명이 내습하여 일본 경찰의 밀정으로 추정되는 마을 사람 1명을 총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일진회원 1명을 납치하였다. 그 후 이 소식을 접한 포천 주재 순검 신석주(申錫柱)가 수비병과 함께 추격해 오자 의병은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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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신팔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전투를 행한 곳. 서파 전투지(西坡戰鬪址)는 북한의 남침 당일 북한군 주력을 방어한 전투 현장이다. 1950년 6월 25일 국군 제9연대는 포천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남침을 받았다. 북한군 전차 부대가 아군의 주저항선 방어 지대 중앙을 통과하자 제9연대 장병들은 후속하는 적 도보 부대만은 격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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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선단동 절터는 선단동 마을 북쪽의 왕방산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전계 대원군 묘(全溪大院君墓) 뒤편의 왕방산과 해룡산 사이에 개설된 등산로를 따라 800m 정도 오르면 해발 고도 약 326m 위치의 남동쪽 능선부에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선단동 산11-14번지이다. 선단동 절터 일대에서 석축 1기가 발견되었으나,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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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선적사 터에 대해서는 기록에 전하는 바가 없어 정확한 절 이름과 유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1942년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 “전부 경작지화되어 있으며 그 터는 완전히 명확하지 않다. 삼층 석탑 1개가 대체로 완전하다. 그 밖에 기와 파편이 셀 수 없이 흩어져 있고 선적사라고 칭한다”라고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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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소학 1리에 있는 조선 전기 가마터. 소학리 가마터는 15세기 초부터 임진왜란(壬辰倭亂) 이전까지 존재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백자 가마터이다. 소학리 가마터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봉소리 자기소(峰巢里磁器所)”로 기록되었으며, 일제 강점기에 발간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에는 경작지에 자기 조각이 산재되어 있다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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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전투력에 밀려 철수하였던 곳. 송우리는 6·25 전쟁 초기 서쪽으로 화엄령을 넘어 동두천 가도의 덕정과 횡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방어 요충이었다. 여기에서 적을 방어하지 못하면 8㎞ 후방의 축석령 사이에 방어할 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국군 제3연대는 태봉산과 해룡산 동남쪽의 178고지를 방패삼아 이곳에서 적을 저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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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송우리 주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1일 거족적인 만세 시위가 시작된 이래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 되어 가던 중 포천 지역에서도 만세 시위가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1919년 3월 24일 송우리 주민 600여 명이 시위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출동한 송우리 헌병 분견소 헌병 경찰들의 총검에 맞서 다수의 부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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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6·25 전쟁 당시 국군이 북한군의 진출을 저지한 곳.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남침할 때 국군 제9연대는 천주산과 가랑산 일대에서 북한군 제3사단 예하 부대의 공격을 받았다. 북한군은 이날 새벽 38도선을 돌파하여 만세교 부근까지 진출하였다. 제3사단 7연대가 국도 43호선을 따라 정면 공격을 하였고, 제9연대가 국군의 주저항선 중앙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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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신흥사 터의 정확한 창건 연대나 성립 후의 활동은 알 수 없으나, 신흥사 터에서 발견된 석조 여래 좌상은 고려 중기의 양식을 띠고 있어서 고려 중기부터 절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할 수 있으며, 6·25 전쟁 이전까지 절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존재 형태나 규모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확인할 수가 없다. 신흥사 터는 포천시 관인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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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에 있는 고려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절터. 안양사 터에 대해서는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향적산(香積山)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견성지(堅城志)』와 『범우고(梵宇攷)』에 폐사되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18세기 후반 이전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일제 강점기에 조사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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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야미리 봉수 터는 미로곡(彌老谷) 봉수 터 또는 며로곡 봉수 터라고도 부른다. 야미리 봉수는 8㎞ 북쪽에 위치한 중군봉 정상에 있는 적골산 봉수로부터 신호를 받아 15㎞ 남쪽의 독산 봉수로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영평 읍지(永平邑誌)』에는 “원군 25명, 보군 75명[元軍二十五名 保軍七十五名]”이라고 야미리 봉수의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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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향교 터. 영평 향교(永平鄕校)는 조선 시대 영평군[현재 포천시 북부 지역]에 소재하였던 향교로 1938년 철폐되어 현재 터만 남아 있다. 영평 향교는 1173년(명종 3) 창건하여,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나 1594년(선조 27) 중건해 성리학의 강학과 유림의 제향을 병행해 오면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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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중면 영평리에 있는 조선 시대 관아 터. 영평리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영평현 관아는 일제 강점기에 주재소로 사용되다가, 이곳이 38선 인접 지역인 까닭에 6·25 전쟁 때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영평현 관아 터는 영평 초등학교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영평 초등학교 정문 앞에는 인근에서 공사할 때 발견되어 옮겨 온 선정비 3기와 초등학교 내에 미륵불과 귀부가 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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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있는 3·1 운동 당시 신북면민이 만세 시위를 벌인 곳. 1919년 3월 29일 중면 신사리의 유중식은 2통의 통문을 받았다. 그 내용은 “내일 신북면사무소 앞에 군중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자 하니 여러 사람과 같이 나오라”는 일종의 사발통문이었다. 유중식은 독립 만세를 부른다는 통문 내용에 찬성하여 동리 사람을 모아 놓고 “지금 사발통문이 돌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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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선단동에 있는 1907년 의병 활동이 일어났던 곳. 군대 해산 이후 울분을 금치 못한 해산 장병들은 지방 의병과 합류함으로써 의병의 역량을 배가시켰다. 1907년 9월 20일 이후부터 포천 지역에서도 이러한 영향으로 의병 활동이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다. 같은 해 10월 이후 포천을 주 무대로 의병 활동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2월 김연성(金演性)이 이끄는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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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어룡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왕방산 절터에 있던 사찰의 정확한 창건 연대를 알 수 없으나, 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55호인 포천 석조 여래 입상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방산 절터는 왕방산의 남쪽 기슭 남동향으로 자리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어룡동 산32-1번지이다. 사역(寺域) 북단에는 포천 석조 여래 입상 1구가 현존하고 있고, 남쪽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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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마터. 운천리 옹기 가마터는 제7598부대 301부대 주둔지 북쪽 부대시설과 인접한 남향 비탈의 아래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곳은 군부대가 위치하기 전에 있었던 마을 이름이 ‘점말’로 불리던 곳으로, 운천리 옹기 가마터에 지명의 연원을 둔다. 가마터가 위치한 곳은 포천시 영북면 운천리와 인접하여 솟아 있는 각흘봉의 남쪽 지맥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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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에 있던 조선 시대 흑유 도기 가마터. 포천시 일동면 유동리에 70여 년간 거주하였다는 유홍렬에 의하면, 자신이 어렸을 때 이곳에 옹기점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30여 년 전 도로 공사를 할 때 다수의 옹기류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가마터로 추정되는 서쪽에는 1995년까지 민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일동 레이크 골프 클럽의 퍼블릭(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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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자일리 절터는 포천시와 철원군의 접경인 영북면 자일리 중군봉 아래 동쪽 비탈면 경작지에 위치하고 있다. 1996년 9월~1997년 4월 자일리 절터에 대해 단국 대학교 사학과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고, 청자, 백자,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다. 약 661.16㎡[200평]의 대지가 형성되어 있는데, 사찰은 남동 60°의 축선으로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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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절취미 절터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의 절취미 약수터 오른쪽 경작지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590번지이다. 절터는 약 2,314.05㎡[700평]이다. 마을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 이곳에 절이 있었으며, 약수가 나와 절집 약수터라 부른다고 한다. 과거에 기와·토기·자기 조각 등이 흩어져 있었다고 하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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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 4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주원리 가마터는 영평천 변, 북동쪽으로 뻗은 해발 142m 낮은 능선 끝자락에 위치한다. 주소지는 포천시 창수면 주원 4리 산215-1번지이다. 주변 지역에서 백자 조각을 중심으로 많은 양의 자기 조각이 수습되었으며, 도침(陶枕)[자기로 만든 베개] 및 가마벽 조각 등도 수습되었다. 백자 대접 조각은 회색 사질토를 활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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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죽엽산 절터는 포천시 소흘면 고모 2리 죽엽산 아래에 위치한 석원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약 1㎞ 오른 9부 능선에 위치하고 있다. 주소지는 포천시 소흘읍 고모리 산34번지이다. 하단에 위치한 석축은 길이 15.3m, 높이 80㎝ 정도만 남아 있다. 석축의 하단에는 가파른 산세가 형성되어 있어 사역(寺域)을 구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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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 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47 철원도호부 봉수조에 “적골산 봉수는 부의 서쪽으로 46리에 있다. 북쪽으로 소이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경기의 영평현 미로곡에 응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도 43호선 포천과 철원의 경계점에 위치한 울음봉 맞은편 적골산 정상부에 있다. 중군봉 봉수 터에 민묘 1기와 봉수에 활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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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초과 2리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초과리 절터는 길이 50m, 높이 20m의 암반을 뚫어 굴착한 석굴과 요사채로 구성되어 있다. 동향한 석굴은 길이 16.7m, 높이 2.4m, 깊이 10.2m 규모로 상면과 하면이 타원형의 형태를 이루며 교차하고 있다. 석굴의 벽과 천장에는 굴착한 흔적이 역력히 보이고, 하면에는 굵은 모래가 깔려 있다. 석굴의 남쪽에는 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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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에 있는 개항기 포천 출신 의병장 최익현의 생가 터. 가채리에서도 최익현이 태어난 마을은 경주 최씨(慶州崔氏)가 많이 살고 있어서 최가채리라고도 불렀다. 이 마을은 450여 년 전 경주 최씨의 중시조인 한산 군수 최수준[1472~1527]이 낙향하여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듯하다. 최익현은 1833년(순조 33) 12월 5일[음력] 포천시 신북면 가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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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추동 1리에 있는 조선 시대 절터. 한나 기도원 관계자에 의하면 1992년 기도원을 신축하기 위해 대지를 정리하던 중 꽃그림이 새겨진 많은 기와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나 기도원 곳곳에서 물결무늬[파상문(波狀紋)]가 새겨진 회청색의 기와 조각을 찾을 수 있는데, 남동 70°의 축선을 지닌 사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추동리 절터는 포천시 창수면 추동 1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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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야미리에 있는 1951년 태국군이 포천 일대에 배치되어 전투를 수행한 곳. 태국군의 참전 경위는 유엔이 한국 군사 원조를 결의하자 6월 30일 미곡 지원을 유엔에 통보하였고, 유엔 사무총장이 7월 14일 지상군의 파견을 요청하자 7월 20일 1개 여단 규모인 지상군 4,000명의 파견을 유엔에 통보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유엔군의 북진으로 전황이 호전되자 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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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신읍길에 있는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4학년생들이 동맹 휴학을 벌인 곳. 포천 공업 보통학교 동맹 휴학은 1927년 이 학교 4학년 학생들이 송원(宋原) 일본인 교장의 학생 구타에 집단 반발하여 동맹 휴학을 한 사건이다. 1927년 포천 공립 보통 학교 송원 일본인 교장이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을 구타하자, 교장을 배척하고자 동맹 휴학을 하였다. 학생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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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오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동 김씨의 고가 터. 포천 안동 김씨 고가 터에 대한 문헌 기록은 없다. 다만 인근에 위치한 금수정(金水亭)에 대해서는 16~17세기 기록이 있지만, 안동 김씨 종가 터에서 확인된 집터의 편년은 16~17세기 기록보다 후대의 것이어서 집터와의 연관성은 확인하기 어렵다. 안동 김씨 종가 후손인 김광분의 진술에 따르면, 종가는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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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냉정 1리에 있는 조선 후기 봉수 터. 할미산 봉수는 서북방으로 10.5㎞ 떨어진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사요리의 소리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 6.5㎞ 남쪽의 적골산 봉수에 연결하였다. 할미산 봉수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 등의 철원도호부편 봉수조에는 소개되지 않았으나, 『여지도서(輿地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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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설운동에 있는 고려 시대 절터. 마을에서는 이곳을 절골이라고 부르는데, 청자 및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절터로 추정된다. 해룡사에 대해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 여지지(東國輿地志)』에 “해룡사는 해룡산의 감지(鑑池) 옆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견성지(堅城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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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일동면 화대 2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마터. 화대리 가마터는 포천시 일동면 화대 2리 강수봉 아래 양물골 내 한나물골 주말 공원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잡목이 우거져 있으나 남서향의 낮은 언덕에 길이 14m, 폭 5m에 걸쳐 소토와 자기 조각이 수습되어 가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능선 아래로는 등산로와 작은 개울이 있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등산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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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분청사기 가마터. 화현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포천시 화현면 화현리 산190번지에 있는 운악산 자연 휴양림 매표소를 지나 조금 들어가면 오른편으로 보이는 잔디 광장에 위치한다. 화현리 분청사기 가마터는 약 1,695㎡[512.74평] 규모로 운악산 일대에 자연 휴양림 조성을 계획한 산림청이 육군 사관학교 화랑대 연구소에 의뢰해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