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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충성스러운 노비. 박귀동(朴貴同)은 진잠 현감을 지낸 이만증(李萬增)의 노비였다. 이만증이 어려서 홀로 됐는데, 30여 년 동안 가난한 주인을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하루 같이 모셨다. 자녀가 10여 명이고, 손자는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박귀동은 포천현의 남쪽 청량촌(淸凉村)[현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에서 살았다. 이만증이 어려서 홀로 되어 가세가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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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포천 출신의 교육자. 양운하(楊雲夏)[1895~?]의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유리 출신으로 인천 공립 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23년 12월 소흘읍에 있던 송우 공립 보통학교 부훈도로 재직하면서 경기도에서 시행된 소학교 보통학교 교원 2종 시험에 합격해 같은 학교 훈도가 되었다. 이후 줄곧 포천과 연천 지역 초등학교에서 근무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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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 출신의 정치인. 윤성순(尹珹淳)[1895~1971]은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리에서 태어났다. 경성 공업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 미네소타 주립 대학교를 거쳐 컬럼비아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이화 여자 전문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한때 대동 광업 주식회사 참사, 북선 흑연 광업 소장을 지냈다. 해방 후 충청남도 상공 국장과 학무 국장,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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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출신의 충노(忠奴). 이험산(李險山)은 진사 이수온(李守溫)의 하인으로 고장산 아래에서 살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갑자기 적병들이 들이닥치자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는데, 이험산의 주인만 병든 몸이라 피난을 갈 수 없어 어린 자식을 어루만지며 울고 있었다. 이험산은 측은한 생각이 들어 자기 가족은 두고 주인 아들을 업고 도망쳐서 충성스런 마음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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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 묘가 있는 정치가. 장면(張勉)[1899~1966]의 호는 운석(雲石)으로, 인천광역시에서 출생하였다. 8세에 인천 성당에서 운영하는 박문 학교(博文學校)에 입학, 한학을 수학하였다. 1917년 수원 고등 농림 학교[서울 대학교 농업 생명 과학 대학 전신]를 졸업하였다. 1919년 YMCA 영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1925년 한국 천주교 청년회 대표 자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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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포천 출신의 교육자. 정도식[1900~1955]은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경기도 공립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 개교한 일동 공립 보통학교 훈도에 임명되었다. 1938년 13년 동안 근무했던 일동 공립 보통학교를 떠나 가평군 조종 심상소학교로 전근하였다. 정도식은 농촌 부흥을 위해 귀가 후에는 야학을 열고 마을 청년들을 가르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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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와 현대 포천 출신의 교육자. 조종무(趙鍾武)는 1925년 설립된 포천군 영북면 영북 공립 보통학교 훈도로 교육계에 발을 디뎠다. 1934년 5월 영북 공립 보통학교 개교 10주년 기념과 동시에 10년 근속 기념식을 치렀다. 1936년 영북 공립 보통학교 증축에 10원의 의연금을 기부할 정도로 학교에 애착을 가졌다. 이듬해 포천군 소흘읍 송우 보통학교 훈도로 옮겨 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