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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지방 행정 구역. 견성군(堅城郡)은 신라 경덕왕 때 한화 정책의 일환으로 개편한 포천의 옛 이름이다. 포천은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견성으로 바꾸었다. ‘홀(忽)’이 ‘성(城)’을 뜻한다는 정약용(丁若鏞)의 『아방강역고(我邦疆域考)』를 참조하면, ‘마홀’은 ‘마성(馬城)’을 뜻하며, 이것이 ‘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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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공덕원(功德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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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는 광릉의 수호 및 관리를 담당하던 관직. 수호군(守護軍)은 수묘군(守墓軍)이라고도 하였는데,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 치장(治葬)에 의하면, 각 능마다 능지기 2명, 수호군 100호를 설치하여 관리를 담당하게 하였다. 또 절일(節日)에 따른 치제(致祭)가 제대로 수행되도록 수직(守直)을 설치하고, 능묘 가까운 곳을 능묘의 주위 사람들로 하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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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포천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교주도(交州道)는 고려 시대의 5도(道)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은 춘주도(春州道)·동주도(東州道)·교주도 등으로 명칭이 계속 바뀌어 나가는데, 이는 해당 중심 주의 위상이 변화하면서 바뀐 것으로 추측된다. 교주도는 고려 초 행정 구역 정비 과정에서 5도 체제가 성립되면서 하나의 행정 구역으로 자리 잡았으며, 1263년(원종 4)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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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지방 행정 구역. 내을매현(內乙買縣)은 고구려 때부터 사용되었던 지명이며, 양골현(梁骨縣)과 함께 마홀군(馬忽郡)에 속한 속현이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에 “사천현(沙川縣)은 본시 고구려의 내을매현으로,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도 그대로 일컫는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기 양주도호부에 “사천현은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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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동면(東面)은 조선 영조 이후 재편된 영평현의 방리(坊里) 체계를 구성하고 있던 행정 구역이다. 동면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후 설치되었다가 『대동지지(大東地志)』 편찬[1864] 이전에 다시 일동면과 이동면으로 분화된 것으로 보인다. 『대동지지』에서는 일동면의 범위를 “처음이 15리, 끝이 30리”이며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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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신라 제35대 경덕왕(景德王)이 재위 16년[757] 지방 지배 체제의 정비 목적으로 군현제 개편을 시행하면서 고구려 지배 당시의 지명인 양골현을 동음현(洞陰縣)으로 변경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685년(신문왕 5) 9주 5소경을 편제하면서 한주[또는 한산주]에 속하였고, 757년 군현 개편에 따라 동음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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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 태조가 고려를 세우고 송악을 수도로 삼은 뒤 후고구려의 수도인 철원을 동주(東州)로 개칭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의 동주 항목에는 “동주는 원래 고구려의 철원군(鐵圓郡)[모을동비(毛乙冬非)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은 철성군(鐵城郡)으로 만들었다. 그 후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의 옛 땅을 빼앗고 송악군으로부터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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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지방 행정 구역. 광개토대왕릉비문과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에 “영락 6년조 백제의 58개성을 점령한 뒤 그 지역에 ‘마홀(馬忽)군’을 설치하고 관아를 고모루성(古牟婁城)에 두었다”라고 한다. 고구려 때는 마홀군(馬忽郡), 일명 명지군(命旨郡)으로 불렀다. 신라 진흥왕 때 견성군(堅城郡)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때는 청성(靑城)이란 지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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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신라와 고려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명. 『고려사(高麗史)』 세가 제1, 태조 6년에 “신축일에 명지성 장군 성달(城達)이 그 아우 이달(伊達), 단림(端林)과 함께 귀순하여 왔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같은 책 세가 제1, 태조 11년에는 “8월에 왕이 충주(忠州)로 갔다. 그때에 견훤이 장군 관흔(官昕)을 시켜 양산(陽山)에 성을 쌓았기 때문에 왕은 명지성 원보 왕충(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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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포천시에서 어려움에 처한 포천 시민에게 맞춤형 복지 서비스로 집수리를 제공하는 사회 복지 전달 체계. 포천시 소재의 주거 환경 개선이 시급히 필요한 노후 주택, 주거 환경이 열악한 가구를 대상으로 무한 돌봄 사랑의 집수리 지원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긴급 지원을 받은 후에도 위기 상황이 해소되지 않은 가정, 위기 상황이나 현행 법·제도로 지원이 어려운 가정 중 봄철 해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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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역원. 원(院)은 고려·조선 시대에 출장한 관원들을 위해 각 요로(要路)와 인가가 드문 곳에 둔 국영 숙식 시설이지만, 상고(商賈)나 여행자의 숙식소로 활용되기도 하였으며, 지방 통치와 교통을 위한 기능을 하였다. 벽탄석원(碧呑石院)이 언제 설치되고 폐치되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전하는 초기 경기도의 117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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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와 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잡지, 지리4 고구려에 “비성군(臂城郡), 즉 마홀(馬忽)이라고도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성군(臂城郡)이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자료는 『삼국사기』 지리지가 유일하다. 옛 고구려의 지명을 나열하며 한산주의 비성군을 적고, 마홀이라고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두 지명이 같은 시기에 병용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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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의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5 잡지 제4, 지리 2 신라에 “사천현(沙川縣)은 본래 고구려 내을매현(內乙買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기 양주도호부에 “사천현. 본래 고구려의 내을매현인데, 신라가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견성군(堅城郡)의 영현(領縣)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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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 소(所)를 비롯한 향(鄕)·부곡(部曲)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다만, 수암소(垂巖所)의 설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포천현 항목 고적조(古蹟條)에는 “수암소는 현의 북쪽 20리에 있다[垂巖所 在縣北二十里]”라고 하였다. 수암소는 고려 시대의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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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 통신 기관 중 하나로, 쌍곡역(雙谷驛)은 포천 지역에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포천현 고적조(古蹟條)에는 “쌍곡역은 현 남쪽 30리에 있다[雙谷驛 在縣南三十里]”라고 하였다. 쌍곡역은 고려 시대에 포천 지역에 설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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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통신 기관 중 하나로, 안기역(安奇驛)은 포천 지역에 설치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포천현 역원조(驛院條)에는 “안기역은 현 북쪽 4리에 있다[安奇驛 在縣北四里]”라고 하였다. 또한 윤지(尹漬)가 중수하자 성현(成俔)이 이를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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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고구려의 지방 행정 구역. 『삼국사기(三國史記)』 제35, 잡지 지리 2 신라에 “동음현(洞陰縣)은 본래 고구려 양골현(梁骨縣)이었는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11 영평현 건치 연혁조에는 “본래 고구려 양골현인데, 신라에서 동음(洞陰)이라 고쳐서 견성군의 속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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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을 관할하던 지방 행정 구역. 양광도(楊廣道)는 도내의 양주(楊州)와 광주(廣州)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고려 시대 5도(道) 중 하나이다. 양광도는 본래 한강 이북은 고구려, 한강 이남은 백제 영토였다. 고려가 삼국을 통일하고 995년(성종 14)에 지방 행정 구역으로 구성된 10도가 이후 5도로 재편되어 가면서 1106년(예종 1)에 양광충청주도라는 명칭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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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교통 통신 기관. 역(驛)은 왕래하는 관료나 사신들을 접대하고 공문서를 전달하며 관수 물자를 운반하던 교통 통신 기관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영평현 역원조(驛院條)에서 양문역(梁文驛)에 대해 “현 동쪽 9리에 있다. 항간에서 독흘이라 부르는데, 양골이 와전된 것인 듯하다[在縣東九里 俗號獨訖 疑梁骨之訛]”라고 하였다. 또한 성현(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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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을 관할하던 진관. 1457년(세조 3) 군사 제도의 일종인 진관 체제(鎭管體制)를 새롭게 설치하면서 양주진(楊州鎭)이 설치되었다. 양주진에는 포천을 비롯해 연천(漣川)·마전(麻田) 등 모두 10여 지역이 소속되었다. 전국을 일원적인 군사 체제인 진관 체제로 편성하면서 신설된 진관이다. 양주진과 관련해서는 『세조실록(世祖實錄)』 3년 10월 20일조에 “양주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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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영평대도호부(永平大都護府)는 조선 후기 1618년(광해군 10) 영평군에 포천현을 합하여 설치한 행정 구역이다. 대도호부는 처음에는 군사적인 요충지에 설치되다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일반 행정 기구로 변모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는 정3품 대도호부사와 종5품의 판관 관원이 임명되었다. 영평대도호부는 1629년(인조 7) 두 지역이 분리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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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포천 지역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영평현(永平縣)은 1393년(태조 2) 설치된 행정 구역으로, 이후 계속 유지되다가 1618년(광해군 10)에 포천현과 합하여 영흥대도호부가 되었다. 1629년(인조 7) 두 지역이 분리되어 영평현이 다시 설치되었다. 영평현은 조선 건국 직후인 1393년에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앞서 고려 후기 원종 때 영흥현(永興縣)이라 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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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산골이라는 뜻의 ‘양골’현(梁骨縣)이었던 영흥현(永興縣)은 한탄강 유역의 산간 분지에 위치하고 있던 고려 시대 행정 구역이다. 1268년(원종 9) 임연(林衍)이 김준(金俊)을 제거할 때, 강윤소(康允紹)가 도움을 주었기에 1269년 논공행상으로 강윤소의 고향인 동음현을 영흥현으로 승격시키고 현령을 두었다. 『고려사(高麗史)』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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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 소(所)를 비롯한 향(鄕)·부곡(部曲)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다만, 용곡소(龍谷所)의 설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영평현 항목 고적조(古蹟條)에는 “용곡소는 현 동쪽 30리에 있다[龍谷所 在縣東三十里]”라고 하였다. 용곡소는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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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 향(鄕)을 비롯한 소(所)·부곡(部曲)은 특수한 목적에 따라 설치된 행정 구역이다. 다만, 유석향(乳石鄕)의 설치 목적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영평현 항목 고적조(古蹟條)에는 “유석향은 현 북쪽 40리에 있다[乳石鄕 在縣北四十里]”라고 하였다. 유석향은 고려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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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에 포천 지역을 부르던 별칭. 고려 성종이 포주(抱州)의 별호를 청화(淸化)로 정하였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의 양광도 항목에는 “포주는 원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명지(命旨)라고도 한다]인데 신라 경덕왕은 견성군(堅城郡)으로 고쳤다.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성종 14년에는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목종(穆宗) 8년[1005]에 이를 없앴으며 현종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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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고려 시대 포주(抱州)는 원래 고구려의 마홀군(馬忽郡)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견성군(堅城郡)이 되었다가 고려 초에 포주로 개칭된 행정 구역이다. 고려 현종 때 양주(楊州)에 소속되었다. 고려 시대 지방 제도의 정비는 982년(성종 즉위년) 6월에 최승로(崔承老)의 건의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983년 2월에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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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2003년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였다. 14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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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포천은 고려 초에 포주(抱州)로 개칭된 이래 995년(성종 14)에 단련사(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에 폐지하였고, 1018년(현종 9)에 양주에 소속되었다가 1172년(명종 2) 양주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를 두었다. 1390년(공양왕 2)에 경기도가 좌도와 우도로 분리되면서 경기좌도에 속하게 되었다. 1413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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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 포천 지역에 있었던 지방 행정 구역. 풍양현(豊壤縣)은 고려 초 이전에 황양(荒壤)으로 불리던 명칭을 개칭한 것이다. 1018년(현종 9)부터는 양주(楊州)에 속하였다가, 이후에 포주(抱州)에 속하였다. 조선 전기인 1419년(세종 1)에 다시 양주로 이속시켰다. 고려 건국 초 지방 제도의 개편 과정에서 설치된 지역이다. 『고려사(高麗史)』 권56 지리지 1 양광도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