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6025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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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음역 | Samdonggut Nori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소강춘 |
[개설]
삼동굿 놀이는 전라북도 남원시 보절면 괴양리의 삼동굿 놀이 보존위원회에서 매년 음력 7월 15일 백중에 행하는 민속놀이이다. 지네가 닭을 해친다는 설화에서 일 년에 한 번 음력 7월 15일 백중에 삼성(양촌마을·음촌마을·개신마을)의 세 동자를 앞세우고 입신양명 및 마을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삼동마을 기세배, 당산제, 우물굿, 삼동서기, 지네밟기, 합굿(마당밟기) 등으로 진행되며, 「지네밟기 노래」를 부른다. 1982년 전국민속놀이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유래]
언제부터 삼동굿 놀이를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는 계룡산이 세 곳 있는데, 함경도 계룡산과 충청도 계룡산, 전라도 계룡산이 그것이다. 그중에 전라도 계룡산은 남원시 보절면에 있는 뒷산으로, 산봉우리가 수탉의 벼슬 모양으로 생겨서 계룡산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양촌마을의 뒷산은 풍수지리적으로 닭에 해당한다고 한다.
해발 700여m의 계룡산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데, 동쪽으로 지네 모양의 약산(藥山)이 있다. 계룡산 밑에는 장태(닭장)봉이 있고, 그 아래 회산천(回山川)과 만나는 지점에 영계욕진(靈鷄浴塵, 언양김씨의 묘가 있음)이라는 대명당이 있다. 이곳에 묘를 쓰면 삼정승이 나온다고 알려진 곳이다.
일설에, 마을 앞에 있는 약산이 지네의 형국이어서 이를 방비하고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 고려 후기부터 지네를 밟아주고 자손의 무병과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삼동굿의 풍속이 생겼다고 전한다.
[진행 순서]
오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한 해의 결산을 하고, 장기자랑 등 술멕이 놀이를 한다. 그러고는 오후에 점심을 먹고 세 마을에서 굿패를 만들어 민속놀이인 삼동굿 놀이를 시작한다. 삼동굿은 사내아이를 순산하여, 커가는 과정에서 무병하여 잘 자라고, 성장해서는 글을 배우고 과거에 급제하고, 농부는 농복을 많이 얻어 풍년 들기를 기원하는 과정을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는 놀이이다.
삼동굿 놀이의 첫 순서는 여름굿이다. 여름굿이란 괴양리의 양촌마을과 음촌마을, 개신마을 굿패가 각 마을 입구에 모여서 치는 굿을 말하며, 이렇게 한바탕 굿을 친 다음 삼거리에서 하나로 모인다.
삼거리에서 하나가 된 굿패는 형님 기에게 인사를 하고, 당산으로 이동하여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마치면 마을 우물로 이동하여 우물굿을 친 뒤 마을 광장으로 이동한다. 광장에 모인 굿패는 먼저 아이들의 무병장수와 입신출세를 기원하는 삼동서기와 마을의 풍년과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지네밟기를 한다.
삼동서기는 흥겨운 풍물 소리와 함께 시작하는데, 남자 세 사람(중동받이)이 어깨를 짜고 그 위로 산모역을 한 사람이 올라가 세 명의 동자를 놀이 순서대로 어깨 위로 올린다. 놀이는 출산 과장·성장 과장·입신출세 과장 등 세 과장으로 진행된다.
출산 과장은 산모역이 아기를 분만하는 행위를 하고, 성장 과장은 젖먹이의 시늉과 고난 극복을 상징하는 놀이를 한다. 그리고 입신출세 과장에서는 액을 풀고 등과(登科)했음을 표현하는 놀이를 전개한다.
한 아기는 무관이 되고 한 아기는 과거에 급제하며 한 아기는 문관이 되는 과정이 끝나면 지네밟기를 하는데, 세 마을에서 동원된 부녀자들은 한 줄이 되어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엎드려서 마치 지네가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삼동들은 이러한 부녀자의 등 위로 올라가 밟아줌으로써 명당을 침범한 지네를 마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다. 이때 진행자와 주민들이 「지네밟기 노래」를 함께 부르는데, 「지네밟기 노래」는 다음과 같다.
(앞소리)
삼괴정이 우리동민 지네밟기를 힘을 쓰세/삼강오륜 예의촌은 삼괴정이 이아닌가
삼태화백 계룡산에 영계옥진 대명당은/삼정승이 난다하고 자고지금 전해왔네
삼생굿을 저지네가 삼백육순 욕침하니/삼동굿을 마련하여 삼동으로 밟아내세
삼십삼천 도솔천명 저지네를 반복시켜/삼재팔란 물리치고 삼괴정이 부흥한다
(후렴)
얼럴럴 지네밟기 일심으로 지네밟세/얼럴럴 지네밟기 일심으로 지네밟세
「지네밟기 노래」를 부르면서 마을 주민들의 무병장수와 입신출세를 기원하고,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굿패와 구경꾼이 한데 어울려 한바탕 신명나는 합굿을 벌이며 삼동굿 놀이를 마친다.
[삼동굿 놀이 전설]
괴양리에는 삼동굿 놀이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전설이 있다. 염라대왕이 저승에 온 사람들에게 꼭 묻는 말이, “너는 이승에서 삼동굿 놀이를 보았느냐?”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네 보았습니다.” 하면, “몇 번이나 보았느냐?” 하고 다시 묻고는, 세 번 이상 보았다고 하면 천당으로 보내고, 만약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면 “그 좋은 굿을 한 번도 못 보았다면 너는 필시 수전노나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뱅이가 분명하니라.” 하면서 지옥으로 보낸단다.
또 한 가지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삼동굿을 하면 그 해에 풍년이 들고, 부득이한 사정으로 굿을 하지 못하면 뜻하지 않는 흉년이 든다고 한다. 삼동굿을 할 때에는 인근 마을이나 다른 지역 사람들까지 몰려들어 온 마을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장관을 이룬다.
[삼동굿 놀이 후일담]
삼동굿 놀이가 세상에 알려지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한다. 마을 주민 김재녕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까지만 하더라도 음촌마을에서는 삼동굿 놀이에서 지네밟기를 반대했다고 한다.
“음촌의 뒷산이 지네혈인디, 지네를 밟으면 닭이 지네를 해친다고, 글먼 마을에 해가 온다고 믿었다고 하등마, 그 전 어른들이 그랬는디, 그래가꼬 82년도에 전국민속놀이경연대회에 전북 대표로 출전할 때도 음촌서는 그냥 보조만 했제, 긍게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한쪽은 손해가 있고 그런개비여…….
글고 마을에서도 출전 안 한다고 했는디, 긍게 돈없이 빚지면 누가 갚을 것이여, 그렇게 논의가 됐는디, 논 몇마지기 팔 각오로 출전했제. 그래가꼬 논란도 많았는디, 심사위원이 일어나서 박수친 일은 우리 삼동굿밖에 없었당마. 긍게로 신이 나서 시방까지 굿을 치고 있는디, 시방은 사람이 없어서 못헌당게, 전에 우리끼리만 헐 때는 재미났는디.”
[삼동굿 놀이의 현재]
괴양리 사람들은 스스로를 전통 민속놀이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의미에서 전통 문화의 파수꾼으로 자부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삼동굿 놀이의 보존과 전승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고령화와 이농현상으로 삼동굿 놀이를 계승할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문화 행정 차원에서 삼동굿 놀이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기능 보유자들이 작고하기 전에 보존 대책을 서둘러야 할 때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