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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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城劇場 |
영어공식명칭 | Anseong Theater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151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건 |
개관|개장 시기/일시 | 1968년 - 안성극장 개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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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3년 - 안성극장 폐관 |
최초 설립지 | 안성극장 -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 1511 |
성격 | 극장|영화관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안성면 장기리에 있던 비상설 극장.
[건립 경위]
6·25 전쟁 이후 수많은 문화 예술인을 포함하여 영화인들이 대거 전주, 대구, 부산으로 피란하면서 전라북도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한국 영화 산업을 이끌어 가는 중추적 역할을 한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한국 영화사의 대표작인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피아골」[1955], 한국 최초의 컬러 영화인 최상관 감독의 「선화 공주」[1957] 등이 전라북도에서 제작되며, 전라북도는 한국 영화 산업의 메카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또한 전라북도에서 제작된 영화들을 통해 김진규(金振奎), 허장강(許長江) 등의 배우들이 인기 스타로 급부상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1961년 무주군 읍내리에 최초로 생긴 무주 문화 극장의 호황에 힘입어, 무주군에서 영화 사업은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었다. 이에 따라 각 면에서는 현재의 농협 창고 같은 곳에서 비정기적으로 영화를 상영하게 되었는데, 안성면에서도 1968년 안성극장(安城劇場)이 들어섰다. 대표자는 박호서(朴鎬緖)이었다.
[변천]
무주읍에 위치한 상설 문화 극장과 달리 안성극장은 영화 수급의 문제로 비정기적으로 운영되었다. 극장 형태를 갖추기보다는 당시 규모가 큰 담배 창고 같은 곳에서 운영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영하다가 필름이 끊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그때마다 아세톤으로 응급 처치하며 영화를 상영하곤 하였다. 이후 무주 읍내에 있던 무주 문화 극장과 마찬가지로 안성극장도 1970년대 초 텔레비전의 보급에 따라 재정 적자에 허덕이고, 수익 창출을 위해 쇼 공연 및 가수 공연 등을 유치하지만 무주 문화 극장의 규모에 밀리는 상황에서 결국 개관 6년 만인 1973년에 문을 닫았다.
[구성]
총 200석 규모이었으며 무주 문화 극장과 마찬가지로, 안성극장도 전주시의 배급소에서 필름을 대여하여 영화를 상영하였다. 주요 상영작으로는 신성일과 엄앵란이 출연한 소위 ‘청춘 영화’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전쟁 소재 또는 신파(新派) 영화들이 주를 이루었다. 당시 영화는 무주군 중·장년층에서 대단한 인기를 누렸고, 돈이 없던 10대들은 몰래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관람하곤 하였다. 이 같은 공짜 영화 관람을 무주군에서는 ‘빠방’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