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6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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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泰洪 |
영어공식명칭 | Ha Taehong |
이칭/별칭 | 군범(君範),백고(栢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이동희 |
출생 시기/일시 | 1849년 - 하태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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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924년 - 하태홍 사망 |
출생지 | 무주 도호부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
거주|이주지 | 무주 도호부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
거주|이주지 | 남원부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
거주|이주지 | 전주부 -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 |
성격 | 유학자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행종사랑 궁내부 주사 |
[정의]
근대 무주 출신의 유학자.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군범(君範), 호는 백고(栢皐). 조선 전기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하재황(河在璜)이고, 아버지는 하대호(河大鎬)이다. 하재황은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 규약과 남전 향약(藍田鄕約)을 강구하여 고을을 교화하였고, 사창(社倉) 운영 책임을 맡아 흉년이 들자 농민들을 위해 환곡(還穀) 대신 쭉정이를 받아들였다가 벌을 받기도 하였다. 하대호는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유림의 장로로 전주로 달려가 태인 사람 김종만(金鍾萬)과 흥의소(興義所)를 창의하였다.
[활동 사항]
하태홍(河泰洪)[1849~1924]은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 현내리에서 출생하였다. 학식과 충절이 뛰어났으며, 효행 또한 깊었고 형제의 우애도 돈독하였다. 행종사랑 궁내부 주사(行從仕郞宮內部主事)로 있으면서 조정이 항상 분열되어 있는 것을 개탄하였다. 낙향하여 1895년(고종 32) 일본의 낭인들이 명성 황후(明成皇后)를 시해한 을미사변(乙未事變)이 일어나자 같은 고을의 박중호(朴重浩), 김직현(金直鉉)과 더불어 일본을 배척하고 조정의 각성을 촉구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무주 향교(茂朱鄕校)의 대성전과 동무(東廡), 서무(西廡)를 보수하였고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