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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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寶城吳氏孝烈碑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산17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최범호 |
건립 시기/일시 | 1941년 - 보성오씨 효열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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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보성오씨 효열비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산17 |
성격 | 비석 |
양식 | 석비 |
관련 인물 | 권영유(權永裕) 처(妻) 보성오씨(寶城吳氏)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06㎝[높이]|36㎝[너비]|13㎝[두께] |
소유자 | 안동 권씨 문중 |
관리자 | 안동 권씨 문중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보성오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개설]
권영유(權永裕) 처(妻) 보성오씨(寶城吳氏)는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몸과 마음을 길렀고, 남편을 섬길 때는 반드시 공경하고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하였다. 1877년(고종 14) 봄에 온 집안이 모두 돌림병에 걸려 불행히도 남편이 죽고 말았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손수 장례를 마치고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결심하였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시숙(媤叔)의 병세도 위급하여 당장 간호할 사람이 없었다. 이에 오씨는 슬픔을 참고 견디며 시어머니와 시숙의 병 구환에 정성을 다하여 열흘 정도 지나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였다. 이후 시가와 친정 부모의 겨울옷과 여름옷을 일일이 빨고 꿰매어 장롱에 넣어 두고, 수일간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부엌에 챙겨 놓은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약을 먹고 남편의 허리띠를 잡은 채 조용히 운명하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18일 만이었다.
[건립 경위]
1941년 보성오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안동 권씨 집안에서 비를 세웠다.
[위치]
보성오씨 효열비(寶城吳氏孝烈碑)는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산17번지에 위치한다. 나제통문 삼거리에서 무설로로 우회전한 후 11㎞ 이동하면 대평 마을이 나오는데, 대평 마을 국도 변 솔밭에 있다.
[형태]
높이 106㎝, 너비 36㎝, 두께 13㎝ 규모의 화강암 재질의 석비이다.
[금석문]
비명은 ‘전교관 안동 권영유 배 보성오씨 효열비(前敎官安東權永裕配寶城吳氏孝烈碑)’이고, 기묘년(己卯年)에 의정부 찬정원임 시강원 첨사(議政府贊政原任侍講院詹事) 완산(完山) 이재현(李載現)이 글을 짓고, 승훈랑 외부원외랑 한산(韓山) 이긍복(李肯馥)이 썼다. 소화(昭和) 16년(1941) 6월 일에 큰조카 권석채(權奭采)가 글을 짓고, 권용식(權容植)이 전(篆)을 하였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