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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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棲碧亭 |
영어공식명칭 | Sedbyeokje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로 1868-30[두길리 2109]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유철 |
건립 시기/일시 | 1886년 - 서벽정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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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891년 - 서벽정 재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1년 - 서벽정 보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2년 6월 20일 - 서벽정 전라북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서벽정 전라북도 기념물 재지정 |
현 소재지 | 서벽정 -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로 1868-30[두길리 2109] |
성격 | 누정 |
양식 | 목조기와 |
정면 칸수 | 4칸 |
측면 칸수 | 3칸 |
소유자 | 사유 |
관리자 | 송영문 |
문화재 지정 번호 | 전라북도 기념물 |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원당천 주변에 있는 개항기 정자.
[개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7]이 낙향하여 머물면서 호남과 영남 지역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었다. 서벽정(棲碧亭)이 자리하고 있는 일대는 천연의 절경을 이루어 예부터 많은 선비들이 즐겨 찾았으며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각 계곡을 ‘무계구곡(武溪九曲)’이라 명명하고 아홉 군데의 명소마다 명칭을 붙였다. 서벽정은 그 중에 제4곡인 일사대(一士臺)에 위치한다. 본래는 수성대(水城臺)라 부르던 곳으로 송병선이 이곳에 정자를 짓고 후진을 양성할 때 이 고장 사람들이 송병선의 학리(學理)를 보고 ‘동방에 하나밖에 없는 선비’라 하여 ‘동방일사(東邦一士)’라는 별호를 붙이고 송병선이 사는 곳이라 하여 일사대라 하였다고 한다.
서벽정을 건립한 송병선은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으로 자는 화옥(華屋)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학문과 절제 있는 행동으로 천거 받아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으나 취임하지는 않았다. 송병선은 『벽사설(闢邪說)』을 지어 양학(洋學)과 천주교를 배척하고, 일본과의 개국 통상을 반대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되자 단식하여 을사오적(乙巳五賊)을 처형할 것, 현량(賢良)을 뽑아 쓸 것, 기강을 세울 것 등의 십조봉사(十條封事)를 올렸으며, 일본에 대한 경계를 건의하여 고종(高宗)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이후에 다시 고종에게 상소하려 하였으나 윤철규(尹喆圭) 경무사(警務使)에게 속아 일본 헌병에 의해 고향으로 이송 당하자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며 음독자살하였다. 죽은 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1962년에는 대한민국 건국 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무계만집』과 문집으로는 『연재집』이 간행되었다.
[위치]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 2109번지[구천동로 1868-30]에 자리한다.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나제통문(羅濟通門)과 구천동을 잇는 국도 37호선을 따라 5㎞ 가다 보면 좌측 원당천(元塘川) 주변 동산 위에 있다.
[변천]
1886년(고종 23)에 건립되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891년(고종 28)에 재건하였다. 1897년(고종 34)에 무주 군수인 조병유(趙秉瑜)가 주자(朱子)와 송시열의 초상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6·25 전쟁 때에는 북한군의 숙영지이기도 하였으며, 1971년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형태]
서벽정은 담장 안에 자리하며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덤벙주초 위에 사각형 기둥을 세웠는데 건물은 정자의 형태가 아니라 서원의 강당 형식으로 건립되었다. 정면 우측 1칸은 누각처럼 바닥을 기둥 가운데에 올려 아궁이를 만들었다. 건물의 연면적은 367㎡ 내외이다.
[현황]
서벽정에는 1970년까지 송병선의 판목(板木)이 있었는데 체계적으로 보존되지 않아 사료로서 가치를 잃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남원에 있던 일부 판목을 보관하던 사당이 허물어져 서벽정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1992년 6월 2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 제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서벽정은 조선 시대 사대부의 단아한 재실의 형태를 띠고 있어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변의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게 건립된 조선 후기 정자의 형태를 잘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