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50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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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y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전라북도 무주군 |
시대 | 선사/석기,선사/청동기,선사/철기 |
집필자 | 이종철 |
[정의]
전라북도 무주 지역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시대.
[개설]
선사(先史)는 역사(歷史)와 구분되는 시간적 영역으로서 문자 기록이 없던 시대를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일부가 여기에 해당한다. 선사 시대는 문자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고고학적인 연구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확보된 자료를 고고학적으로 분석하여 시간과 공간의 축을 설정한다. 자연 유물은 당시 자연환경을 복원하는 데 활용되고, 인간에 의해 제작된 다양한 유물들은 고고학적 이론에 근거하여 당시의 문화를 복원하는 데 적극 쓰이게 된다.
[무주의 선사 시대]
무주 지역에서는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의 유적이 모두 확인되었다. 구석기 시대는 무주군 무주읍과 부남면에서 세 곳, 신석기 시대는 설천면에서 한 곳, 청동기 시대는 부남면·설천면·안성면·적상면에서 스물다섯 곳이 조사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로는 돌을 깨서 제작하는 뗀 석기[타제 석기(打製石器)]가 일반적인데, 무주 지역에서는 석영을 돌감으로 하는 석기가 주로 발견되었다. 신석기 시대는 빗살무늬 토기가 대표적인데,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서 처음으로 이러한 토기편이 보고되었다. 청동기 시대는 고인돌이 대표적이며, 유물로는 간 돌검[마제 석검(磨製石劍)]과 간 돌 화살촉[마제 석촉(磨製石鏃)], 민무늬 토기[무문 토기(無文土器)]가 일반적인데 사천리 고인돌 떼1과 사천리 고인돌 떼3이 대표적인 유적이다. 청동기 시대는 주석과 구리를 합금하여 만든 청동으로 도구를 제작하던 시대였지만 아직까지 무주 지역에서 청동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철기 시대는 철기를 이용하여 도구를 만든 시대인데 아직까지 이른 시기의 철기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무주 지역의 선사 시대는 유적의 수량이 매우 적고 성격이 분명하지 않아 문화적 특성을 자세히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현재로는 우리나라 선사 문화의 일반적인 경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청동기 시대는 다른 시대에 비해 해상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세부적인 접근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앞으로 무주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에 대한 밀도 있는 조사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무주의 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에는 대부분의 석기가 뗀 석기였다. 돌감은 강가나 해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석영제 자갈돌뿐만 아니라 흑요석과 유문암, 안산암, 셰일 등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채집해야 하는 암석들도 있다. 이러한 돌감을 이용하여 외날찍개[chopper]와 쌍날찍개[chopping tool], 주먹도끼[hand-axe], 자르개[cleaver], 긁개[scraper], 찌르개[point] 등을 제작하였다. 무주 지역에서 조사된 구석기 시대 유물은 용포리 유물 산포지(龍浦里遺物散布地)2와 굴암리 유물 산포지(屈巖里遺物散布地)2, 대소리 유물 산포지(大所里遺物散布地)2에서 보고되었는데 대부분 석영제이며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는 못하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뗀 석기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지만, 돌을 알맞게 다듬은 후에 일부 또는 전부를 갈아서 용도에 맞는 석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돌감으로는 자갈돌을 비롯하여 화강암, 점판암, 혈암, 사암 등이 주로 사용되었다. 조합식 어구나 그물추와 같은 어로용 도구, 돌 화살촉이나 돌창과 같은 수렵 도구, 돌도끼·갈돌과 갈판[연마석(硏磨石)]과 같은 일상 도구, 낫·가래·괭이와 같은 농경 도구 등 기능과 성격에서 세분화된 특징을 보인다. 신석기 시대에는 석기뿐만 아니라 빗살무늬 토기도 제작되었는데 지역에 따라 그릇의 형태와 문양이 각각 다르게 전개되었다. 무주 지역에서 신석기 시대의 석기로 볼 수 있는 유물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지만, 소천리 유물 산포지(所川里遺物散布地)8에서만 처음으로 빗살무늬 토기편이 확인되었다.
[무주의 청동기 시대]
청동기 시대에는 거의 모든 석기가 간 석기로 제작되었으며 석기 제작 기술의 정점을 이루었다. 청동기라는 신소재로 특수한 도구를 만들기도 하였지만 일상생활 전반에서 간 석기가 보편화되었다. 농경이 출현하고 점점 발달함에 따라 곡식의 이삭을 따는 돌칼[석도(石刀)], 돌괭이, 개래, 호미 등이 제작되었다. 벌채나 목공용으로는 돌도끼[석부(石斧)], 홈자귀[유구 석부(有溝石斧)], 턱자귀[유단 석부(有段石斧)] 등이 만들어졌다. 수렵이나 공격용으로는 돌살촉과 석창이, 의례용이나 무구용으로는 간 돌검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달도끼[환상 석부(環狀石斧)], 별도끼[성형 석부(星形石斧)] 등 다양한 형태의 석기들이 제작되었다. 이러한 석기들과 함께 민무늬 토기도 제작되었는데,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와 달리 문양이 거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무주 지역에서는 사천리 고인돌 떼1에서 출토된 간 돌검과 간 돌 화살촉,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량리 출토 간 돌 화살촉이 표지 유물로 제시될 수 있다. 기곡리 유물 산포지(基谷里遺物散布地)7에서는 돌도끼와 갈판이 확인되었다. 이외에 사천리 고인돌 떼3이 소재하는 무주군 적상면 사천리 길왕리 마을 앞에서 민무늬 토기 저부편이 출토되었다. 현재까지의 고고학적 자료들은 무주 지역의 청동기 시대를 복원하거나 온전하게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지만, 단편적으로나마 무주 지역의 문화적 성격을 파악해 가는 데에는 작지 않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무주의 철기 시대]
무주 지역의 철기 시대는 고고학적·역사적으로 아직까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한(韓)의 영역에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삼국 시대에 무주 지역은 부리현(富利縣)과 주계현(朱溪縣), 무풍현(茂豊縣)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부리현과 주계현은 각각 백제의 두시이현(豆尸伊縣)과 적천현(赤川縣)이었고, 무풍현은 신라의 무산현(茂山縣)이었기 때문이다. 백제와 신라의 영역이 각각 마한(馬韓)과 진한(辰韓)을 모태로 한다는 점에서 삼한 시기까지 추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삼한 시기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유적이 장기리 유물 산포지(場基里遺物散布地)4와 장기리 유물 산포지6인데 자료의 축적이 좀 더 필요하다. 따라서 아직까지 고고학적으로는 철기 시대에 대한 유물이나 유구를 제시할 수 없는 바, 앞으로 지표 조사는 물론 발굴 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