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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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큰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가정(佳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오곡리 가정자(柯亭子)였다. 임진왜란 후 대곡리에 합해진 후 대곡면 가정촌(佳亭村)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정촌과 중촌(中村), 용동(龍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가정리라 하였다. 가정촌에는 서재골, 지식골, 매봉,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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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골짜기의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한 데서 유래된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 대동(大同)이었다. 임진왜란 후 오곡리를 합하여 대곡리라고 부르다가 조선 말기에 대곡면이라 하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시 대곡면의 대동(大同) 일부를 대곡리(大谷里)라 하여 대곡면 10개 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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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면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이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대곡리(大谷里), 오곡리(吳谷里), 그리고 북면(北面) 사죽리(沙竹里), 설매곡리(雪梅谷里), 월배곡리(月背谷里), 잉옥리(芿玉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大谷里), 설매곡리(雪梅谷里)라 하였다가 18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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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대곡면을 관할하는 행정 기관. 경상남도 진주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문산읍], 15개 면[내동면, 정촌면, 금곡면, 진성면, 일반성면, 이반성면, 사봉면, 지수면, 대곡면, 금산면, 집현면, 미천면, 명석면, 대평면, 수곡면], 16개 행정동[천전동, 성북동, 중앙동, 상봉동, 상대 1동, 상대 2동, 하대 1동, 하대 2동, 상평동, 초장동, 평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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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 덕곡동(德谷洞)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에 합병되어 조선 후기까지 대곡면 하촌동과 덕곡동의 일부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촌동, 덕곡, 대여촌면 송곡동 일부를 합하여 덕곡리라 하고 대곡면의 10개 리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남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북쪽은 가정리, 동쪽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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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성 동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로 사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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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농사가 잘되고 마을 앞에 강이 흐르고 나루가 있다 하여 마진(麻津)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마(麻)가 재배되어 삼베옷 등이 지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의 일부로 대동(大同), 소동(小洞), 마진(麻津)이 있었다.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 마진동(麻津洞)이라 하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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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진주목 진주성의 북쪽지역으로 옛 행정구역 또는 행정지명 중 하나. 조선 전기에는 자연촌락의 성장과 중앙집권화의 진행에 의해 중앙권력이 군현의 하부단위인 촌락에까지 개입하게 되면서 면리제라는 촌락운영체계가 형성되었다. 경국대전에 5호(戶)를 묶어 1통(統)으로, 5통을 묶어 1리(里)로 한다고 규정하고, 몇 개의 리를 묶어 면(面)으로 한다고 하였으나 실제로는 읍치를 중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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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대곡리에 있는 산. 대곡리 산 34-2번지 일대에 분포하며, 해발 고도는 305m 정도이다. 산성을 쌓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조성 연대가 불분명하고 성벽은 허물어졌지만 붕괴된 석축의 내부에는 건물지(집터)로 추정되는 석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건물터에서는 기와편이 채집되고, 집터와 우물터, 망루터 등이 남아 있는 산성이 숲 속에 숨겨져 있다. 『국역 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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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세(山勢)를 보면 유동에서 봉평으로 내려오는 지형(地形)이 용(龍)이 누워있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에 속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대곡리(大谷里)에 병합되어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에 속하였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곡동(柳谷洞), 용동(龍洞), 가정동(佳亭洞)과 대여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