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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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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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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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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