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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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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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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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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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재숙(載叔), 호는 청계(淸溪). 증조할아버지는 이중광, 할아버지는 이현재, 아버지는 이명규이다. 1681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하여 영조 병오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예조좌랑에 올랐다. 관직에서 물러나서는 향리인 진주에서 뜻있는 학우들과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특히 향약을 수립하는 등 미풍양속을 선양하는데 심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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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이중광(李重光)의 묘비. 이중광[1592~1685]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경현(景顯), 호는 행정(杏亭)이다. 청송에서 태어나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학문에 정진하여 후학을 가르치고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힘썼으며,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재령이씨 입향조이다. 병자호란 때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을 지냈다. 이중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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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 본관은 재령. 이중광(李重光)의 딸이며, 한시회(韓時晦)의 부인이다. 시부모를 섬기는데 지극한 효성으로 하였다. 시부모가 돌아가자 친정으로 와서 부모를 섬김에 또 효성을 다하였다. 나이 70이 되었어도 의복과 음식을 친히 마련하였으며 부모가 돌아가자 3년상을 치렀다. 숙종 대에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복호(復戶)를 주고 숙부인(淑夫人)을 증여하였다. 『진양속지(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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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재령. 자는 경휘(景輝), 호는 행와(杏窩). 할아버지는 이간, 아버지는 이유성이다. 이중광(李重光)은 그의 아우이다. 어머니 이씨부인은 현모양처로 『진양지(晋陽誌)』에 그 행실이 잘 나타나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외삼촌 아래서 성장하며, 성실하게 학문을 익히고 실천하였다. 유일(遺逸: 재야의 어진 선비)로 천거되어 재랑(齋郞)을 제수 받고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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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방언(邦彦). 조선 중기의 학자인 행정(杏亭) 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후예로 재기가 출중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젊어서 영남학파의 거두인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1627~1704]을 추종하여 따라 배우다가 돌아왔다. 이때 시로써 말하기를 “사람들이 호관(好官) 되기만을 요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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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배원(培元). 행정(杏亭) 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아들로 호는 죽촌(竹村)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1654년(효종 5)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 이중광이 지방에서 유학을 진흥시키는데 힘썼듯이 이현재는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 광서(匡西) 박진영(朴震英)을 따라 때로는 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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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재령이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말기의 건의문. 1901년 경상도 유림에서 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향례시 제물로 소요되는 소를 도축할 수 있도록 관찰사에게 허가를 신청하는 건의문을 올리자 이를 허가 처분한 문서이다. 100여 년 전의 공용문서로, 당시의 생활 모습 일부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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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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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청원마을에 있는 목조기와 형태의 정자. 1885년에 이중광이 건립한 것으로, 이중광의 호를 따라 행정(杏亭)으로 불린다. 행은 복숭아와 은행을 동시에 나타내는 말로서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가르친다는 말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학문교육의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행정 이중광은 인목대비 폐모론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당시 관직에 있었다. 비록 의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