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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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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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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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국장(國章), 호는 해사(海史). 허재(虛齋) 정지탁(鄭志倬)의 후손이다. 용모가 크고 기우가 헌양하여 장자의 도장이 있었다. 일찍이 월촌 하달홍(河達弘), 면우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 있었으며, 족형(族兄) 운파(雲坡) 정한균(鄭漢均)과 더불어 수학하였다. 유집으로 『해사선생문집(海史先生文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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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복여(福如), 호는 운파(雲坡). 우곡(隅谷) 정온(鄭溫)의 후손이다. 『증보 진양속지(增補 晋陽續誌)』에 의하면, 천성이 영민(穎敏)하고 재예(才藝)가 남들보다 출중하였다. 김단계(金端磎), 박만성(朴晩醒)을 따라 학문을 연마하였다. 고려 말 문신이었던 정온이 태조의 역성혁명에 반대하여 고향으로 내려와 지은 우곡정(隅谷亭)[경상남도 진주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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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응원(應遠), 호는 운파(雲坡).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후(淳厚)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6년 동안 손수 약을 달여 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서(隷書)를 쓰는 데 능했다고 한다. 당시에 세간에서 진주 운곡(雲谷)에 여덟 명의 재사(才士)가 있다고 일컬었는데 정한균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