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939 |
---|---|
한자 | 黃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거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송만오 |
거주|이주지 | 황징 이주지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삼거리 상리 |
---|---|
사당|배향지 | 화산 서원 -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 백삼로 30-3[백화리 905]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장수(長水) |
대표 관직 | 호조 참의 |
[정의]
조선 전기 진안에 세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장수(長水). 조선 초기의 유명한 재상이자 청백리의 표상이었던 익성공(翼成公) 방촌(尨村) 황희(黃喜)의 5대손이다.
[활동 사항]
황징(黃澄)[?~?]은 전라북도 진안군 안천면에 세거하는 장수 황씨의 입향조로 알려졌다. 조선 초기에 호조 참의(戶曹參議)를 지냈다. 하지만 문과에 급제하였거나 혹은 생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아 벼슬은 음직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추측된다.
한편 황징은 원래 경상도 상주(尙州)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1550년(명종 5)에 진안군 이북면 이곡리에 옮겨 살게 되는데 그것은 처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된다. 이북면 이곡리는 현 안천면 삼거리 상리 지역이다.
[상훈과 추모]
황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진안군 안천면 화산 서원에 황보신(黃保身), 황징(黃澄) 등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