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600469 |
---|---|
한자 | 瓦村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 |
시대 | 고대/고대,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문안식 |
[정의]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까지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 일대에 있었던 특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소(所)·부곡(部曲)은 일반적으로 집단 천민의 거주지로 여겨진다. 특히 소(所)는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금·은·동·철·실[絲]·종이·도기(陶器)·먹 등을 만들기 위하여 두었던 특수 기관이었다. 와촌소는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瓦川里)와 다곡리(多谷里) 일대에 자리하였다.
[관련 기록]
와촌소의 존재에 대해서는 『고려사(高麗史)』, 『호구 총수(戶口總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기록되어 있다.
[내용]
‘와촌’의 기원은 고려 시대 기와를 만드는 와기소가 있었던 것에서 연유한다. 와촌소는 원래 기와를 구워 공급하는 곳이었으나 고려 중엽부터 조선 초기에는 차(茶)를 생산하는 다소(茶所)로 운영되었다.
소(所)는 현 아래에 몇 개의 마을을 합해 이루어졌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지금의 화순군 백아면 와천리와 다곡리 일대에 와지다공리 다소(瓦旨多貢里茶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곡리(多谷里)의 '다(多)' 역시 골짜기가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차를 재배하는 지역임을 의미하는 '다(茶)'에서 기원하였다.
다곡리 뒷산 너머에 위치한 화순군 동복면 안성리를 비롯하여 칠정리·구암리·연월리 일대에는 지금도 야생차를 재배하고 있다. 1970년대까지 제다업자들이 매년 방문하여 차를 수집해 갔다고 한다.
[변천]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는 동복현 내북면(內北面)에 와촌(瓦村)과 모로천리(毛老川里)의 존재가 기록되어 있다. 와촌 마을은 원래 기와를 굽던 곳으로 지와물이라 불렸는데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와촌이라 칭하였고, 모로천리는 모로내, 혹은 모릿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와천리는 와촌 마을의 와(瓦)와 모로내 마을의 내[川]를 각각 취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현재 모로내 마을은 수몰되었고 와촌 마을 역시 1985년 동복 수원지 확장 공사로 지금의 지역으로 이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