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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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提岩敎會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제암리 392-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은선 |
설립 시기/일시 | 1905년 8월 5일 - 제암교회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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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제암교회 -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제암리 392-2] |
성격 | 교회 |
설립자 | 안종후 |
전화 | 031-353-0031 |
홈페이지 | http://www.jeamch.com |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에 있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교회.
[설립 목적]
제암교회는 안종후가 제암리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육성하고자 1905년 8월 5일 설립하였다.
[변천]
제암교회는 1905년 8월 5일에 아펜젤러로부터 전도를 받은 안종후가 자신의 집에서 예배모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1914년 안씨 집성촌이었던 제암리 일대에 퇴역군인인 홍원식이 이사를 와 교회의 권사가 되었으며 '서재'를 세우고 애국계몽운동을 하였다. 3·1운동이 한창이던 4월 5일 안종후, 홍원식 등의 기독교인들과 고주리 천도교인들인 김흥렬, 김성렬 그리고 유학자 이정근 등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발안 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불렀고 이 과정에서 주동자들이 검거되어 고문을 당했다. 일본군은 송산면 사강리와 장안면 수촌리 만세 시위에서 일본 경찰이 살해 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 지역의 교회들과 민가들을 불살랐으며 4월 15일에는 제암리 마을 주민들을 제암교회로 소집하여 교회 안에 가둔 뒤에 총격하고 불을 지르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 때 23명이 희생되었으며, 12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이후 교인들은 1919년 7월 12일 초가 8칸의 교회를 재건하였다. 이 때 제암리의 남성들이 거의 다 희생되어 생계가 어려웠는데, 1925년 토마스 부인이 이 지역을 방문하여 100엔을 희사하며 15가구에 토끼를 사주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였다. 1938년 9월 29일 기와 지붕의 세 번째 교회를 준공하였다.
1965년 10월 제암리 학살사건에 대한 일본속죄위원들이 방문을 하였고, 12월 속죄헌금으로 기념교회 건립의사를 표명하였다. 제암교회는 1968년 2월 기념교회 설립에 동의하였고 4월까지 1천만엔[당시 기준 800만원] 모금을 완료하였다. 제암리 3·1운동 희생사건이 발생한 50주년이 되는 1969년 4월 15일 교회와 유족회관의 건축을 시작하여 9월 22일 완공하였다. 1982년 9월 21일 순국선열 23인의 유해를 발굴하여 29일 합동장례식을 치렀고, 1983년 4월 15일에는 사건 현장인 옛날 초가 교회 터에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1999년 9월 16일 예배당과 기념관를 기공하여 2000년 3월 1일 준공하였고, 2005년 8월 5일 100주년 기념예배를 거행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제암교회의 조직은 남선교회, 마리아여선교회, 에스더여선교회, 청장년회가 있고, 교육부서는 초등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가 있으며, 해외선교는 일본, 라오스, 뉴질랜드, 탄자니아 등에서 사역하고 있다.
[현황]
제암교회는 원로목사 1명, 담임목사 1명, 부목사 1명, 교육전사 1명 등이 사역하고 있으며, 선교부, 교육부, 사회봉사부, 예배부, 재정부, 문화부, 관리부가 조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