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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600686
한자 金興烈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기도 화성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철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894년 - 김흥렬 동학농민운동 참여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1일 - 김흥렬 향남면 발안 장날 독립만세운동 주동
활동 시기/일시 1910년 - 김흥렬 천도교 수원교구 순회교사
몰년 시기/일시 1919년 4월 15일연표보기 - 김흥렬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1년연표보기 - 김흥렬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19년 4월 15일 -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
출생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 240번지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천도교 수원교구 순회교사

[정의]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흥렬(金興烈)[?~1919]은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다. 1884년에 동학에 입교하였다. 1894년에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자, 수원 접주 고석주의 휘하에서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후 고향인 팔탄면에 돌아와 천도교 전도사가 되었다. 1910년에는 수원교구 순회교사가 되었으며, 1918년에 천도교 교주 손병희가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자, 이에 응답하여 전답을 처분하여 성금하였다.

1919년의 화성 지역은 3월 하순부터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 장안(長安)·우정면(雨汀面), 팔탄면(八灘面) 등 전 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김흥렬은 3월 31일 향남면(鄕南面) 발안리(發安里) 장날에 안상용(安相容)·안진순(安珍淳)·안봉순(安鳳淳)·김덕용(金德用)·강태성(姜太成)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일제는 화성 지역의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무차별 방화와 학살, 고문 등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군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는 제암리 주민들을 제암리교회로 모이게 한 뒤, 집중 사격을 명령하였는데, 이때 23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어 일본군은 인근의 고주리로 이동하여 천도교인들을 학살하였다. 이때 김흥렬 또한 현장에서 참변을 당하였다.

[상훈과 추모]

제암리·고주리 학살 사건으로 순국한 사실이 확인되어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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