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600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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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容俊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기도 화성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박철웅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2월 28일 - 김용준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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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3월 26일 - 김용준 송산면 사강리 독립만세운동 참여 |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6월 22일 - 김용준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용준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거주|이주지 |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사강리 686번지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일대의 3·1운동에 참여한 화성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김용준(金容俊)[1881~1936]은 1881년 2월 28일 태어났다. 본적은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松山面) 사강리(沙江里) 686번지이다.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송산면 사강리 일대에서 홍면옥(洪㻐玉) 등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28일의 만세시위에서는 일본인 순사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시위를 진압하던 중 홍면옥의 어깨에 총을 쏘는 일이 발생하였다. 김용준은 분노하여 홍면옥의 동생 홍준옥(洪㻐玉), 장인 김명제(金命濟)를 비롯한 김교창(金敎昌)·왕광연(王光演)·문상익(文相翊) 등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도주하는 노구치 고조를 추적하여 돌을 던져 처단하고 시위를 전개하던 중 체포되었다. 1920년 7월 5일 고등법원에서 소요, 살인,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36년 6월 22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송산면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공적이 확인되어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