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두선생유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200580
한자 一蠹先生遺集
영어공식명칭 Ilduseonsaengyujip
이칭/별칭 『일두유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남도 함양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영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919년연표보기 - 『일두선생유집』 간행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반포동 산60-1]
성격 문집
저자 정여창
편자 장현광|전우
간행자 전우
권책 2권 1책[원집]|4권 2책[속집]
행자 10행 18자
규격 28.5×20.2㎝[전체 크기]|24.0×17.0㎝[반곽]
어미 내향이엽화문어미
권수제 일두선생유집
판심제 일두선생유집

[정의]

조선 전기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 일두 정여창의 문집.

[저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자는 백욱(伯勗), 호는 일두·수옹(睡翁)이다. 본관은 하동이다. 김굉필(金宏弼)[1454~1504]과 함께 김종직(金宗直)[1431~1492]의 문하에서 배웠다. 1490년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시강원설서를 지냈다. 1498년 무오사화로 인하여 함경도 종성(鍾城)으로 유배를 갔으며, 1504년 생을 마감한 후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剖棺斬屍)되었다. 중종 때 우의정에 증직(贈職)되었다. 경상남도 함양 남계서원과 합천 이연서원(伊淵書院), 경상북도 거창 도산서원(道山書院)과 상주 도남서원(道南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편찬/간행 경위]

정여창의 문적(文籍)[일정한 목적·내용·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등을 글 또는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 즉 책]은 사화를 겪으면서 전하는 것이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후학들은 모두 불행으로 여기며 안타까워하였다. 그런 가운데 망실되고 남은 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그나마 후인들이 정여창을 생각할 수 있는 자료로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정여창의 문집은 1919년 고향인 경상남도 함양군에 있는 남계서원에서 간행되었다. 장현광(張顯光)[1554~1637]의 실기 발문이 실려 있고 이재(李縡)[1680~1746]의 중간(重刊) 발문도 실려 있다. 속집의 발문은 간재(艮齋) 전우(田愚)[1841~1922]가 지었다.

[형태/서지]

원집(原集)은 2권 1책, 속집(續集)은 4권 2책으로 된 목판본이다. 사주쌍변(四周雙邊)에 전체 크기는 28.5×20.2㎝, 반곽(半廓)은 24.0×17.0㎝이다. 계선(界線)이 있으며, 10행 18자이고, 주(注)는 쌍행(雙行)이다. 내향이엽화문어미(內向二葉花紋魚尾)가 있다.

[구성/내용]

원집 권1에는 시가 1수, 소(䟽) 1편, 제문 1편, 잡저 3편이 실려 있다. 권2는 부록이다. 교서와 반교문(頒敎文), 문묘봉안시고유문(文廟奉安時告由文), 서원 봉안문, 서원 춘추 향축문 4편, 제묘문(祭墓文), 천학행소(薦學行䟽), 행장, 신도비명, 향사당기(鄕祠堂記), 사실대략(事實大略), 찬술(讚述), 시장(詩章) 8편이 실려 있다.

속집 권1에는 시 7수, 서 2편, 잡저 3편, 행장 2편이 실려 있다. 잡저에는 「이기설(理氣說)」, 「선악천리론(善惡天理論)」, 「입지론(立志論)」이 있다. 권2는 부록이다. 서원 사액 제문 3편, 「어제화성성묘서무위고유문(御製華城聖廟西廡位告由文)」, 사제문(賜祭文) 3편, 제문 1편, 「향사당봉안시제문(鄕祠堂奉安時祭文)」, 서원 봉안문 2편, 서원춘추향축문 2편, 남계서원 묘정비, 「천검열소(薦檢閱䟽)」, 종사문묘소(從祀文廟䟽) 3편, 「종산서원 청액소(鍾山書院請額䟽)」, 「남계서원 청액소」가 실려 있다. 권3부터는 부록이다. 서 2편, 「남계서원기」, 「광풍루기(光風樓記)」, 풍영루기(風詠樓記) 2편, 「악양정중건기(岳陽亭重建記)」, 서원상량문 2편, 「유선록서(儒先錄序)」, 「계첩서(契帖序)」, 「화개도발(花開圖跋)」, 「찬술(讚述)」, 시장(詩章) 5편이 실려 있다. 권4에는 세계원류(世系源流), 「사우문인록(師友門人錄)」이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정여창은 동방 5현의 한 사람으로서 조선 유학사의 핵심이며 사림 거두로 문묘에 종사되었다. 그러나 사화로 인하여 남아 있는 문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집(遺集) 형태로 구성된 『일두선생유집』은 정여창과 당시 시대를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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