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301302
한자 瑞洞寺
영어공식명칭 Seodongsa
이칭/별칭 서동사 유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한은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2016년 12월 15일 - 「서동사」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서 승려 정량에게 채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17년 - 「서동사」 해남군에서 펴낸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하권에 수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02월 24일 - 「서동사」 관련 지명인 서동사가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174호로 지정
관련 지명 서동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지도보기
채록지 서동사 -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인문 전설|사찰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최치원
모티프 유형 서동사 창건|칡덩굴의 보호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서 사찰 서동사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이야기.

[개설]

「서동사」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74호로 지정된 서동사(瑞洞寺) 대웅전(大雄殿)을 최치원(崔致遠)[857~?]이 창건하였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1597] 때 칡덩굴이 절을 덮어 소실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서동사」는 2016년 12월 15일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 서동사에서 채록하였으며, 구술자는 승려인 정량[남]이다. 2017년 해남군에서 편찬한 『설화로 꽃피는 땅끝해남』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는 최치원이 창건하였다는 서동사라는 절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이 조선을 침략하여 조선의 절에 불을 지르고 좋은 유물과 유적을 모두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 금평리서동사도 화를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런데 서동사의 다른 건물은 대부분 불에 탔지만 대웅전은 아무 피해를 입지 않았다. 왜군이 서동사를 불태우기 전날, 대웅전 앞에 있던 칡덩굴이 하룻밤 사이에 대웅전 전체를 뒤덮어 왜군이 대웅전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여 불태우지 않았다고 한다. 칡덩굴 때문에 대웅전이 불타지 않았다고 하여 서동사갈천사(葛天寺)라 부르기도 한다. 현재 서동사는 대웅전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만 남아 있다.

[모티프 분석]

「서동사」의 모티프는 ‘서동사 창건’, ‘칡덩굴의 보호’ 등이다. 「서동사」서동사를 ‘갈천사’라 부르게 된 유래에 관한 전설이다. 「서동사」는 ‘서동사 창건-일제의 침략-서동사 소실-대웅전 보존’의 서사로 진행되며, 소실된 서동사의 다른 건물과 보존된 대웅전의 대조를 통하여 대웅전에 신성성을 부여하였다. 「서동사」에는 ‘서동사 대웅전은 일어날 수 없는 비일상적인 현상에 의해 보호받은 신성한 공간’임을 암시하는 지역 주민들의 종교적 세계관이 담겨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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