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3008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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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興寺晩日庵址 |
영어공식명칭 | Daeheungsa Manilamji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산9]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인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고려 중기 - 대흥사 만일암 중수 추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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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75년 - 대흥사 만일암 중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세기 초 - 대흥사 만일암 중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36년~1795년 - 대흥사 만일암 중건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09년 - 대흥사 만일암 중건 |
소재지 | 대흥사 만일암지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산9] |
성격 | 암자 터 |
[정의]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에 있는 13대강사가 머물던 대흥사의 산내 암자 터.
[개설]
대흥사 만일암지(大興寺晩日庵址)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의 대흥사에 있다. 만일암의 정확한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중기 중건되었고, 13대강사가 머문 곳이다.
[변천]
대흥사는 창건 이후 조선 전기까지 만일암에 관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암자 터에 고려 중기 이후 오층석탑이 남아 있어 적어도 고려 중기에 만일암의 중건이 한 차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만일암은 강희(康熙) 14년인 1675년 용신선사(融信先師)가 중건하고, 강희 말년 현기화상(玄己和尙)이 중수하였으며, 응명두타(應明頭陀)가 건륭년간[1736~1795]에 중수하였다. 이후 1809년 자암전평(慈菴典平)과 은봉두운(隱峰斗芸)이 중건하였다. 만일암에는 만화원오(萬化圓悟), 연해광열(燕海廣悅) 등의 13대 강사들이 머물렀다. 13명의 대강사는 나암승제(懶庵勝濟), 운담정일(雲潭鼎馹), 연해광열, 영곡영우(靈谷永愚), 벽담행인(碧潭幸仁), 퇴암태관(退庵泰瓘), 낭암시연(朗巖示演), 금주복혜(錦洲福慧), 만화원오(萬化圓悟), 영파성규(影波聖奎), 완호윤우(玩虎倫佑), 아암혜장(兒庵惠藏), 범해각안(梵海覺岸)을 말한다.
[위치]
대흥사 만일암지는 두륜산 가련봉 아래 북미륵암과 남미륵암 사이에 있다.
[현황]
대흥사 만일암지에는 오층석탑과 석등 부재, 맷돌, 우물지 등만 있다. 석탑은 기단부가 홀쭉하고 제법 많은 석재가 사용된 고려 중기 석탑 양식이다. 유실된 상륜부[탑 꼭대기층 옥개석 위의 금속이나 돌로 만든 장식물]를 대신하여 석등의 옥개석이 올려져 있다. 1층 탑신을 가로로 둘로 나누어 쌓았다. 1층과 2층의 옥개석 받침은 5단이며, 위쪽 옥개석에는 4개의 받침을 두었다. 옥개석 낙수면은 급경사이며 네 귀퉁이에 우동마루가 두텁게 돌기되었다. 옥개석 위 탑신의 굄은 생략되었다. 대흥사 만일암지에 칠층석탑이라는 기록이 보이고, 석탑이 도괴된 흔적이 있어 추후 연구가 필요하다.
[의의와 평가]
대흥사 만일암지는 건립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중건하여 대흥사를 대표하는 13대 강사들이 주석(駐錫)[선종에서, 승려가 입산하여 안주함을 이르는 말]하였던 대흥사의 산내 암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