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5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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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七佛寺亞字房址 |
영어의미역 | Ajabang building site of Chilbul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곽승훈 |
문화재 지정 일시 | 1976년 12월 20일 - 하동 칠불사 아자방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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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칠불사 아자방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51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82년 |
현 소재지 |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 |
성격 | 건물 방 터 |
양식 | 온돌[이중] |
소유자 | 칠불사 |
관리자 | 칠불사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칠불사에 있는 신라 시대 ‘아(亞)’자 방 터.
[개설]
칠불사(七佛寺)가 처음 창건된 시기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전설에 따르면, 1세기경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金首露王)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인도 승려 장유보옥선사(長有寶玉禪師)를 따라 칠불사에 와서, 수도한 지 2년 만에 모두 성불하여 ‘칠불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위치]
[변천]
전설에 따르면, 칠불사 아자방(七佛寺亞字房)은 신라 효공왕(孝恭王)[재위 897~912] 때 담공선사(曇空禪師)가 처음 축조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의 상황은 알지 못하나 1830년(순조 30) 칠불사 화재 때 칠불사 아자방도 함께 소실되었다. 금담선사(金潭禪師)와 대은선사(大隱禪師)의 노력으로 5년 만에 사찰의 모든 건물을 중창하였는데, 아자방도 이때 중건되었다.
1907년(순종 1) 의병 봉기 때 퇴락하였던 건물들을 화상 서기룡(徐起龍)이 중수하였으나, 1951년[혹은 1949년] 지리산 전투의 참화로 다시 소실되었다. 이때 아자방이 있는 건물도 불에 타 버렸으나 초가로 다시 복원하였다. 이후 1982년에 현재와 같이 새로 지었다. 하지만 아자방의 온돌은 처음 만든 이래 1,000년을 지나오는 동안 한 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므로,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100년마다 한 번씩 아궁이를 막고 물로 청소를 하였다고 전한다.
[형태]
칠불사 아자방의 길이는 약 8m이고, 방 안 네 귀퉁이에 70㎝ 높이로 좌선대를 마련하였다. 좌선대에서는 승려들이 좌선을 행하였으며, 중앙의 낮은 곳은 불경을 읽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이러한 구조가 ‘亞(아)’자와 같다고 하여 아자방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난방을 위해 온돌을 이중으로 구축하였는데, 그로 인해 한 번 불을 넣으면 상하 온돌과 벽면까지 100일 동안이나 따뜻하다고 한다.
[현황]
2011년 현재 하동 칠불사 아자방지(七佛寺亞字房址)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칠불사이다. 1976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온돌은 담공선사가 처음 조성하였을 때의 모습 그대로이다. 지금도 동안거와 하안거에 승려들의 수행 장소로 쓰이고 있는데, 남부 지방에서는 수행 장소로 칠불사 아자방을 선호한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칠불사 아자방은 방 안 네 귀퉁이에 좌선대를 마련한 구조가 특이하며, 승려들이 선을 수행하는 깨달음을 얻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 고려 시대 정명 대선사, 조선 시대의 추월조능(秋月祖能), 벽송지엄(碧松智嚴), 서산 대사(西山大師), 초의 선사(草衣禪師) 등과 같은 고승들이 칠불사 아자방에서 수행하여 선의 법맥을 이었다. 이런 점에서 선종 사상의 맥을 이어 가는 도량으로서 사상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칠불사 아자방 온돌은 한 번 불을 지피면 100일[혹은 40일] 동안이나 따뜻하여 『세계건축대사전』에도 수록되어 있다. 온돌은 만든 이래 한 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므로, 뒤에 새로 복원하였다고는 하나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어서 그 의미와 보존의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