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00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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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郡大韓靑年團 |
영어의미역 | Daehan Youth Association, Hadong Branch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용국 |
[정의]
1949년 12월 경상남도 하동 지역에 설립된 청년 단체.
[개설]
대한청년단은 대동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 조선청년동맹, 국민회청년단, 대한독립청년단, 서북청년회 등이 대동단결의 뜻을 모아 조직한 단체이다. 총재에 이승만, 최고 위원에 장택상(張澤相)·지청천(池靑天)·전진한(錢鎭漢)·노태준(盧泰俊)·서상천(徐相天)·유진산(柳珍山)·강낙원(姜樂遠)·신성모(申性模) 등이 추대되었다. 대한청년단은 문화·계몽사업, 향토방위를 위한 군사 훈련도 실시하였다.
대한청년단이 200만의 단원을 규합하여 전국적인 조직 체계를 갖출 때 하동 지역에도 정준조(鄭俊朝)·이우봉(李佑奉)·이준의(李駿儀)·여관규(余琯奎)·조중남(趙重男) 등이 주도하여 조직이 결성되었다. 하동군 대한청년단은 건국 전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주로 향토방위 활동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설립 목적]
하동군 대한청년단은 경상남도 하동 지역의 문화·계몽 사업, 향토방위 활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하동군 대한청년단은 1949년 12월 19일 정준조[초대 단장], 이우봉[2대 단장] 등이 주도하여 창립되었다. 향토 자위대로서 각 읍면별 청년단이 조직되면서 범군민적 우익 청년 단체로 급성장하였다. 이후 6·25 전쟁이 발발하고 지리산 빨치산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되면서 민간 전투 부대인 ‘대한청년단 기동대’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지리산 빨치산 활동이 소멸되면서 사실상 해체되었으며, 생존자 중심으로 그들의 활동을 기념하는 하동향토전우회를 결성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청년단은 창립 당시 문화·계몽 사업과 함께 향토방위를 위한 군사 훈련도 실시하였다. 하동군 대한청년단은 중앙의 전국 조직이 결성되기 전부터 자위대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건국 전후 여수·순천 사건과 같은 지역의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향토방위 중심으로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러한 성격이 더욱 강화되었다.
중앙의 전국 조직이 결성되기 전인 1948년 10월 청년 단원 1,500명이 여수·순천 사건 가담자들의 지리산 입산을 위한 섬진강 도강을 방어했으며 지리산의 빨치산 활동과 맞물려 민간 전투 부대도 편성 운영하였다. 하동군 대한청년단 기동대는 하동군 하동읍 출신의 여관규 대장을 포함하여 900여 명에 이르렀으며 옥종면 양구·월횡 전투, 악양 형제봉·청암 묵계·회신·시목·궁항 전투, 화개의 신흥과 의신·삼신, 하동을 벗어나 산청군 덕산지구 전투, 전라북도 덕유산 빨치산 토벌 등 모두 200여 회의 크고 작은 전투를 주도하였다.
[의의와 평가]
하동군 대한청년단은 건국 전후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 좌우익의 갈등과 대립 속에서 우익 청년 단체로서 하동의 자위를 위해 활동했으며 특히 6·25 전쟁 중 빨치산 토벌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