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17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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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九錫 |
영어공식명칭 | Choi Guseok |
이칭/별칭 | 백빈(伯彬),백치(白癡)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광우 |
출생 시기/일시 | 1740년 - 최구석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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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789년 - 최구석 금호서원 청액 상소 |
활동 시기/일시 | 1799년 - 최구석 농소 개진 |
몰년 시기/일시 | 1821년 - 최구석 사망 |
출생지 | 최구석 출생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 |
묘소|단소 | 최구석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 |
성격 | 학자 |
성별 | 남 |
본관 | 경주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학자.
[개설]
최구석(崔九錫)[1740~1821]은 하양 출신의 학자로 1790년(정조 14) 금호서원(琴湖書院) 사액(賜額)을 주도하였다.
[가계]
최구석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백빈(伯彬), 호는 백치(白癡)이다. 아버지는 최윤형(崔允亨), 어머니는 전응천(全應天)의 딸 옥산 전씨(玉山全氏), 할아버지는 최화중(崔華重), 증조할아버지는 최헌(崔巘)이며, 부인은 전응광(全應光)의 딸 옥산 전씨이다. 최구석의 경주 최씨 가문은 경주에 세거하다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지낸 6대조 최곤(崔崑) 대부터 경상도 하양현(河陽縣) 일대에 정착하였다.
[활동 사항]
최구석은 1740년(영조 16) 경상도 하양현 한사리(翰斯里)[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한사리]에서 출생하였다. 5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여러 경전을 밝았으나 과업에는 뜻을 두지 않고, 친우들과 산수 유람을 즐겼다. 평소 같은 고을의 허협(許浹)·김광식(金光湜)·박윤기(朴允基)·도명인(都命寅) 등과 교유했다.
1789년(정조 13) 향유(鄕儒) 채사현(蔡思玄) 등 하양현의 사족들이 허조(許稠)[1369~1439]를 제향하는 서원의 사액(賜額)을 청원하기 위하여 상소문을 올렸다. 당시 최구석은 허조의 후손 허협과 함께 소청(疏廳)의 장의(掌議)를 맡았다. 그 결과 1790년 허조를 제향하는 서원이 금호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1799년(정조 23)에는 농업 진흥을 위해 여러 의견을 개진하라는 정조의 교서에 따라 농소(農疏)를 지어 올렸다.
[학문과 저술]
최구석의 문집으로 『백치유고(白癡遺稿)』 3권 1책이 전한다. 『백치유고』에는 시(詩)가 73수로 가장 많으며, 소(疏)에는 농소가 수록되어 있다. 잡저(雜著)에 수록된 「금호서원연액시사실(琴湖書院延額時事實)」은 경산 지역 유일의 사액서원인 금호서원의 사액 과정을 엮은 것이다.
[묘소]
최구석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 당학곡(堂學谷)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