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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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興寺 |
영어공식명칭 | Gyeongheungsa Temple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산전리 8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병선 |
건립 시기/일시 | 1637년 - 경흥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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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644년 -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봉안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719년 - 경흥사 중창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897년 - 경흥사 중창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0년 - 경흥사 대웅전 및 요사 중수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 경흥사 대웅전 신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9년 8월 31일 -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5호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2년 2월 22일 -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보물 제1750호 지정 |
최초 건립지 | 경흥사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산전리 806] |
현 소재지 | 경흥사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모골길 196-55[산전리 806] |
성격 | 사찰 |
전화 | 053-812-9933 |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산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 소속 사찰.
[개설]
경흥사(慶興寺)는 1637년(인조 15)에 창건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동학산(動鶴山)[603m] 기슭에 위치해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경흥사는 659년(무열왕 6)에 혜공화상(惠空和尙)이 창건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지만, 근거가 희박하며 1637년에 창건되었다.
1990년 10월 20일 경흥사 법당 해체 중 상량 도리 중앙부에서 한지(韓紙)로 만든 봉투 모양의 통이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는 상량문 3건이 들어 있었다. 상량문은 ‘영좌 경산 남면 동학산 경흥사 삼창기(嶺左 慶山 南面 動鶴山 慶興寺 三創記)’, ‘숭정2년 정축6월일 경흥사 신창기(崇禎二年 丁丑六月日 慶興寺 新創記)’, ‘강희58년 기해2월일 법당 중수 이시창내증(康熙五十八年 己亥二月日 法堂 重修 而始創乃曾)’ 등 3개인데, 이 중 가장 빠른 신창기가 1637년에 작성된 것이다. 다만, 신창기의 ‘숭정 2년 정축’은 ‘숭덕(崇德) 2년 정축’의 오기이다. 따라서 경흥사는 1637년에 창건되어 1644년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慶山慶興寺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을 봉안하였으며, 1719년(숙종 45)에 중창하고 1897년(광무 1)에 삼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퇴경당전서(退耕堂全書)』에는 김사숙(金士淑)에 의해 삼창되었다고 전한다.
1970년대에 대웅전[현 명부전]에 봉안되었던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개금불사(改金佛事) 하였으며, 1990년에 재윤(在閏)이 대웅전을 해체·복원하고 요사 1동을 보수하였다. 이때 새로 지은 대웅전이 1993년에 완공되어 현재의 명부전에 있던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대웅전으로 이전 및 봉안하였다. 1996년에 대웅전, 명부전, 요사 등 건물 5동을 단청하였으며, 대웅전에 봉안된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개금하였다.
[활동 사항]
경흥사에는 1,000여 명의 신도가 활동 중이며, 지역 포교에 힘쓰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경흥사의 당우로는 대웅전(大雄殿)·명부전(冥府殿)·자미전(紫微殿)·독성전(獨聖殿)·산령각(山靈閣)·강학당(講學堂)·심우당(尋牛堂)·범종각·요사·종무소 등이 있는데, 중심 불전은 대웅전과 명부전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보물인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로 경상북도 문화재자료인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慶山 慶興寺所藏須彌壇部材)가 유존하고 있으며, 이 수미단에 석가모니불상이 주불로 지장보살상과 관세음보살상이 협시로 봉안되어 있다.
자미전과 독성전은 대웅전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구조 건물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 1칸씩 사용하고 있다. 산령각은 대웅전 뒤편 자미전·독성전과 나란히 위치하고 있는데, 정면과 측면이 각각 1칸씩인 맞배지붕 구조이다.
강학당은 공부하는 공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대웅전 앞 명부전과 나란히 위치한다. 이 밖에도 승려들의 수행 공간인 심우당과 종각에 비해 종이 너무 커서 종각 안에 2개의 고주를 세워 종을 매달아 놓은 범종각,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 사찰의 업무 공간인 종무소, 6기의 조선 시대 종형 부도가 있는 부도전 등이 있다.
[관련 문화재]
경흥사는 지정문화재로 보물 1점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점을 보유하고 있다.
보물 제1750호인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불상이 주불로 좌우에 문수보살상과 보현보살상이 협시로 봉안되었다. 1970년대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개금불사 때 발견된 복장기(腹藏記)의 조성기문(造成記文)에 의하면, 1644년(인조 22)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주존불은 결가부좌한 아미타불상으로 두발은 나발(螺髮)이고 둥그스름한 작은 육계(肉髻)가 있으며, 귀는 짧고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으나 이목구비와 삼도(三道)를 갖춘 모양이 온화함을 주고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모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양쪽으로 내려진 머리카락은 두 귀를 감싸면서 어깨 위로 드리웠을 뿐 수식은 없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5호인 경산 경흥사 소장 수미단 부재는 1644년에 경산 경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봉안할 때 함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미단은 초월적인 수미산을 표현한 것으로, 경흥사에 남아 있는 일부의 수미단은 명부전이 대웅전으로 사용될 당시의 것이다. 수미단 전면은 가로 350㎝, 높이 20㎝이며, 좌우 측면은 120㎝이다. 일반적인 수미단의 구조나 크기로 볼 때 현존하는 부재는 원 수미단의 일부에 불과하다. 겨우 한 단 정도 남아있지만 수미단의 구성과 조각 수준이 뛰어나다고 평가된다.
한편, 부도전에는 조선 시대 부도 6기가 있는데, 1722년(경종 2)에 조성된 지월당혜휘대사(智月堂慧輝大師) 부도와 탑비, 해운당치흠대사(海雲堂致欽大師) 부도, 금구당선각대사(琴龜堂禪覺大師) 부도 등 3기는 주인이 확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