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10069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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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是聲 |
영어공식명칭 | Kim Siseong |
이칭/별칭 | 문원(聞遠),금포(錦浦)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감병훈 |
출생 시기/일시 | 1602년 - 김시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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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36년 - 김시성 무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37년 - 김시성 심양에서 소현세자 및 봉림대군 시종 |
활동 시기/일시 | 1644년 - 김시성 북경에서 소현세자 및 봉림대군 시종 |
활동 시기/일시 | 1647년 - 김시성 충청도 수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48년 - 김시성 함경남도 병사 및 경상좌도 병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56년 - 김시성 경상 병사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62년 - 김시성 삼도 수군 통제사 부임 |
몰년 시기/일시 | 1667년 - 김시성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786년 - 남호사 제향 |
거주|이주지 | 김시성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
묘소|단소 | 김시성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
사당|배향지 | 김시성 배향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 |
성격 | 무신 |
성별 | 남 |
본관 | 청도 |
대표 관직 | 삼도 수군 통제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무신.
[개설]
김시성(金是聲)[1602~1676]은 1637년(인조 15)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1644년 익찬(翊贊)이 되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효종]을 시종하여 심양에 다녀왔다. 관직은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에 올랐다.
[가계]
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문원(聞遠), 호는 금포(錦浦)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응수(金應洙), 할아버지는 김영(金瑩), 아버지는 김사행(金四行), 어머니는 평산 신씨(平山申氏)로 현감을 지낸 신해(申海)[1549~?]의 딸이다. 부인은 청안 이씨(淸安李氏)로 이경춘(李景春)의 딸이다. 동생은 삼괴정(三槐亭) 김시명(金是鳴)[1604~1660]이다.
[활동 사항]
김시성은 8세 때부터 독서를 부지런히 하였고, 15세가 되던 해에 모당(慕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에게 학문을 배웠다. 또한 한강(寒岡) 정구(鄭逑)[1543~1620]가 아버지 김사행의 거처였던 식송정(植松亭)에서 강학하자, 김시성이 정구를 찾아가 공부하였다. 22세에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1554~1637]을 찾아가 『중용(中庸)』을 배웠다. 김시성은 향리에서 학문을 닦던 중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김시성은 난세에 무(武)로써 나라를 구하고자 다짐하고, 무과 별시(別試)에 응시하여 급제하였다. 이때부터 무인으로서 관로(官路)가 시작되었다.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일행이 청의 볼모로 심양에 갈 때에 김시성은 익찬으로서 호위하였고 계속해서 세자의 곁을 지켰다. 귀국 후 시종에 대한 공을 인정받아 용천부사(龍川府使)·강계부사(江界府使)를 지냈고, 1647년(인조 25) 충청도 수사(忠淸道水使)에 올랐다. 1648년(인조 26) 함경남도 병사(咸鏡南道兵使)가 되었고 곧이어 경상좌도 병사(慶尙左道兵使)를 지냈다. 1651년(효종 2) 김익(金釴)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으나 곧 누명임이 밝혀져 풀려났다. 1656년(효종 7) 경상 병사(慶尙兵使)가 되고 이듬해 북병사(北兵使)로 나아갔다. 1662년(현종 3)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로 부임하였다. 재임 중 통제영(統制營)의 성벽을 수리하고 병장기를 수선하였다. 또 노량(露梁)에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비석을 세워 추모하고, 중앙 정부에 건의하여 이순신을 모신 노량 충렬사(忠烈祠)를 사액 받았다. 1667년(현종 5) 관직을 내려놓고 유유자적하다가 72세가 되던 해인 1673년(현종 14)에 고향인 하양으로 내려와 금포정사(錦浦精舍)를 짓고 친우들을 만나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냈다.
[학문과 저술]
김시성의 행적을 엮은 2권 1책의 『금포실기(錦浦實紀)』가 전한다.
[묘소]
김시성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86년(정조 10) 김시성을 제향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들이 남호사(南湖祠)를 건립하였다. 남호사는 1855년(철종 6) 남호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 1928년 후손들이 남호서당(南湖書堂)[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남하새마을길5길 59-13]으로 새롭게 복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