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5351 |
---|---|
한자 | 胎峯山風水 |
이칭/별칭 | 필봉(筆峰),문필봉(文筆峯)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경수 |
전구간 | 태봉산 -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
---|---|
성격 | 풍수 |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있었던 태봉산에 대한 풍수 해석.
[개설]
태봉산은 광주광역시 북구 신안동 일원에 있던 작은 야산[똑뫼]으로 용의 ‘여의주’ 또는 조산비보(造山裨補)로 인식하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헐려 흔적이 없다.
[명칭 유래]
1872년에 제작된 『광주지도』에 ‘고려왕자태봉(高麗王子胎封)’이 보인다. 1933년에 간행된 『광주군사』에는 "만두산(饅頭山)으로 정상에 1627년 세운 석비가 있다"고 적혀 있다. 왕자의 태를 묻은 돌함지가 1928년 발견되었다. 항아리에서 지석(誌石)이 나와 태의 주인공이 1624년 태어난 인조 아들이고, 이듬해 3월 태를 묻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자연환경]
신안동 121·124번지에 있던 야산으로 높이 53m이고 바닥 면적은 약 1만㎡이었다.
[현황]
1967년 경양호 매립 때 토취장으로 이용되면서 없어졌다. 태실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 앞에,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태봉의 풍수덕담은 가뭄 때 비를 뿌리게 하는 용의 ‘여의주’와 광주 수구로 조산비보(造山裨補) 풀이로 전해지고 있다.
『현종개수실록』에 "들 한가운데 둥근 봉우리를 골라 그 꼭대기에 태실을 만드는 것이 우리나라의 풍습"이라고 하였다. 『태봉등록』에도 "태봉은 산과 맥이 이어지지 않는 곳을 잡아야 한다."고 하였다. 큰 들판 가운데 ‘똑[똥]산’이었던 광주 태봉산이 본보기인 셈이다.
광주역에서 신안사거리에 이르는 무등로변 광주장례예식장 앞에 태봉산유래비가 세워져 있다. 빗돌에는 "예로부터 광주의 지형을 화룡승천(化龍昇天)의 형국이라 하였다. 뱀 두 마리가 오랜 세월을 거쳐 이무기가 되고 다시 용이 되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른다는 것인데 그 여의주가 바로 태봉산이라 하였다."는 대목이 보인다. 옛 태봉산에서 북동쪽 1.7㎞ 거리인 용봉동 721번지에는 태봉초등학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