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49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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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光川洞市民- |
이칭/별칭 | 광천시민아파트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은옥 |
준공 시기/일시 | 1970년 7월 - 광천동 시민아파트 준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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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78년 - 광천동 시민아파트 2층에 들불야학 입주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1980년 5월 18일~26일 - 광천동 시민아파트 2층 들불야학에서 『투사회보』 인쇄 |
현 소재지 | 시민아파트 - 광주광역시 서구 죽봉대로119번길 22-9[광천동 650-7] |
성격 | 아파트 |
[정의]
광주광역시 최초의 연립형 관영 아파트.
[개설]
광주시가 전라남도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면서 인구의 도시 집중 현상이 심화되었다. 이에 따라 전라남도 광주시 서부출장소[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에 도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라남도 및 광주 지역 최초의 관영(官營) 아파트를 건설하였다. 설계자는 당시 광주시청 영선계에 재직하던 채규당(蔡奎鐺)이다.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1969년 공사를 시작하여 1970년 7월 완공되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광천동 시민아파트에 있었던 들불야학에서 『투사회보』를 인쇄하기도 하였다.
[건립 경위]
광천동 시민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 650번지 일대는 6.25전쟁 피난민들과 영세민들이 거주하던 낙후된 지역이었다. 이곳이 도시 주거 문제 개선 시범 대상지가 되면서 기존 거주자들을 입주 대상으로 계획하여 연립주택을 건설하였다.
[구성]
전라남도 광주시 최초로 연립형 3개 동, 184가구가 'ㄷ'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각 동은 3층으로 지어졌으며 동마다 공동 화장실, 공동 취사구역이 있다.
[현황]
광천동 시민아파트는 5.18민주화운동과 관계가 깊어 5.18민주화운동 사적지로 기념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윤상원이 '나'동에 거주하였고, '다'동 2층에 들불야학을 열어 청년 노동자를 가르쳤으며, 당시 최초의 민중 신문인 『투사회보』를 제작 발간하였던 장소이기도 하다.
건물이 오래되고 주변 지역이 낙후되어 광천동주택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이 시민아파트를 포함한 42만 6380㎡를 재개발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 11월에는 광주광역시 서구청장이 광천동 시민아파트 3개 동 중 1개 동을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는 계획을 언론에 인터뷰한 적이 있고, 2021년 기준으로 광천동 시민아파트의 보존 여부에 대해 계속 논의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