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3269
한자 北洞聖堂
영어공식명칭 Buk-dong Catholic Church
이칭/별칭 천주교 북동성당,공동주교좌 북동성당,북동천주교회,광주북동천주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광주광역시 북구 금재로 76[북동 3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33년 5월 29일연표보기 - 북동성당 설립
현 소재지 북동성당 - 광주광역시 북구 금재로 76[북동 33]지도보기
성격 성당
전화 062-526-3407
홈페이지 https://bukdong.modoo.at

[정의]

광주광역시 북구 북동에 있는 천주교 광주대교구 소속 성당.

[설립 목적]

광주광역시 북구를 중심으로 북동, 누문동 일대, 유동, 중흥동, 서구 양동[양동공소 포함], 동구 대인동, 계림동, 금남로5가 일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북동성당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본당의 공소로 시작하여 1933년 5월 29일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 신부로 민정호[베드로] 신부가 부임하였다. 1933년 10월 아일랜드의 성골롬반 외방선교회가 한국에 진출, 전라남도 지방을 관할하게 되어 같은 해 4월 매 제랄드 신부가 부임하였다. 이후 성골롬바노회 신부들이 본당 주임으로 부임하기 시작하였다. 1934년 건평 37평[122㎡]의 목조 성당이 건립되었으며, 1935년 빈민 아동을 위한 혜성학교가 개설되었다. 1937년 4대 주임 신부로 부임한 구 토마스 신부는 성당 신축의 경험이 많은 중국인 가요셉에게 설계와 공사를 맡겨 이듬해 10월 2일 성당을 완공하고, 1938년 6월 26일 축성식을 거행하였다.

1943년 말 광주대교구장이었던 일본인 와키다 아사고로 몬시뇰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본당 내에 탁아소를 설치하여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광복 이후 1947년 3월 15일 성심유치원을 개원하여 아동 복지에 힘을 기울였으며 1949년 12월 8일 남동본당을 분리하였다. 1957년 광주지목구가 광주대목구로 승격됨에 따라 북동본당은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북동본당의 성장에 따라 1964년 계림동본당, 월산동본당, 곡성본당, 화순본당, 1967년 임동본당, 1968년 호남동본당, 1970년 광천동본당을 분리·분할하였다. 1977년 5월 1일 정규완[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가 부임함에 따라 북동본당을 자립 본당으로 이끌었다. 1999년 4월 30일 광주북동천주교회 건물이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본당 미사는 일요일 오전 6시 30분에 새벽 미사, 오전 9시 가족 미사, 오전 10시 30분에 교중 미사가 있다. 평일 미사는 월요일 오전 6시 30분, 화요일·금요일 오후 7시 30분, 수요일·목요일 오전 10시에 있다. 토요일 오후 7시 30분에 청년을 위한 미사가 있다.

[현황]

주임 신부는 김종걸[요한보스코] 신부, 보좌 신부는 조세천[시몬] 신부이고, 수녀회는 샬르트 성 바오로 수녀회이다.

[의의와 평가]

북동성당은 광주 지역 첫 성당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지역의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