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월묘지공원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에 있는 지방 공기업. 「지방자치법」 제146조·「지방공기업법」 제49조·「광주광역시도시공사 설치 조례」[제2394호]에 의거하여 도시 개발 사업과 광주광역시장이 지정하는 공공 시설물을 효율적으로 관리 운영함으로써 지역 사회 발전과 시민 복리 증진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며 항쟁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5·18민주유공자. 윤상원(尹祥源)[본명 윤개원(尹開源)]은 노동운동가이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대변인 역할을 맡는 등 열흘간의 항쟁 전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윤상원과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하여 1981년에 작곡된 민중가요...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기운[1962~?]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한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남석[1961~?]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사망자 수습을 돕던 중 관을 구하기 위해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 중 행방불명이 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조선대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던 김동수[1958~1980]는 대학생 불교연합 전라남도 지부장으로 석가탄신일 행사 준비로 분주하였다. 행사 준비로 전라남도 목포시에 있다가 광주시에서 일어난 소식을 듣고 광주시로 돌아왔다. 옛 전라남도청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동참하던 중 5월 27일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만두[1936~1980]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금남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근로자였다. 5월 20일 최루탄 가스 때문에 일이 중단되어 김만두는 출근을 안 하고 시위 현장에 나갔다가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복만[1952~1980]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내의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옮기는 역할을 하다가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부열[196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으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어머니는 김차남이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윤수[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고 5월 23일 전라남도 화순군에 사는 누이의 집에 가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공수부대로부터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구두닦이를 하던 김재형[1962~1980]은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계엄군의 만행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였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재화[1954~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역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가 공수부대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정선[1958~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 광천동에 있는 무기고를 지키는 단기사병[방위병]이었다. 5월 21일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계엄군을 방어하기 위해 시민들이 광천동 무기고로 몰려오자 김정선은 무기고를 열었고 시민들과 함께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김종철[1962~1980]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아 하였다. 5월 27일 새벽까지 전라남도청에 남아 있던 김종철은 계엄군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나안주[1953~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친구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던 중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쪽에서 광주광역시 시내로 들어오는 대로. 동문대로는 북쪽에서 광주광역시 시내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동문대로는 담양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말바우시장과 같은 시설은 전통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담양군민들도 자주 이용하는 시장으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말바우시장을 활용한다. 따라서 담양군의 농어촌버스가 동문대로의 일부 구간을 통해 이동한다. 하지만 농어촌버스의 상당수는 동광...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류동운[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한국신학대학[지금의 한신대학교] 2학년 학생으로 서울에서 부모가 계신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시민군의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문재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신분으로 항쟁에 참여해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
광복 이후 독재를 타도하고 민주를 쟁취하기 위해 싸운 민주시민들이 쓰러졌던 장소였을 뿐 아니라, 민주열사들의 노제 장소였던 광주광역시의 대표적인 도로. 한국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기도 하는 금남로는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1가 5.18민주광장부터 북구 발산교까지 이어지는 길이 약 2.6㎞의 도로이다. 일제강점기에 생겨나면서 처음에는 명치정(明治町)이라 불렸다. 1967~1968년 도...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금희[1963~1980]는 1980년 5월 당시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지금의 전남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이었다. 5월 21일 부상자 수혈을 위해 광주기독병원에서 헌혈을 하고 나온 뒤 계엄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국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던 박병규[1961~1980]는 전라남도 광주시로 내려와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성용[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조선대학교부속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옛 전라남도청에서 부상자와 사망자 수습을 돕다가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맞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용준[1956~1980]은 1980년 광주YWCA 신용협동조합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투사회보』를 발행하는 팀에서 필경을 담당하였고,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창권[196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숭의중학교 2학년 재학 중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박현숙[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여자상업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 사상자 수습을 하는 일을 도왔다.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어 박현숙은 시민군과 함께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향하던 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을 지나다가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백대환[1961~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송원전문대학[지금의 송원대학교] 1학년 재학 중 시위대에 참여하였다. 5월 23일 시신을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는 도중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입고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유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서호빈[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화학공학과 2학년 재학 중 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선종철[193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통장으로 마을을 돌아다니며 위험을 알리는 과정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주남마을[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 살았던 손옥례[1961~1980]는 시내에 외출하고 돌아오던 중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통하는 길목에 매복해 있던 계엄군에 의해 살해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병태[1956~1980]는 1980년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 시위 현장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머리에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안종필[1964~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지금의 광주동성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아들을 밖으로 찾아다니며 말렸던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종필은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항쟁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민석[196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 근방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행방불명이 된 지 8년 뒤에야 행방불명자로 인정을 받고 무명열사로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또 21년 뒤 유전자 감식으로 무명열사들의 신원이...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인섭[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참여하였다가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으로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양창근[1964~1980]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신분으로 5.18민주화운동 시위를 하던 중 전라남도 광주시 시외버스공영터미널[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제봉로 225] 부근에서 머리에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염행열[1963~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던 중 5월 27일 마지막 날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에 있는 시립묘지공원. 영락공원은 장례의식 및 묘지 이용자에게 휴식 등을 제공하기 위하여, 일정한 구역 내에 매장 및 묘지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묘지와 공원시설을 혼합하여 설치한 주제공원이다....
-
1991년 명지대학교 학생 강경대의 운구 행렬이 광주직할시 시내로 진입하는 것을 돕기 위해 광주 시민과 학생들이 경찰에 대항해 벌인 투쟁. 운암동 투쟁은 1991년 학원 자주화 투쟁 중 진압 부대의 무차별한 폭행으로 사망한 명지대학교 강경대 열사의 운구 행렬을 광주 시내로 들여오려는 광주 시민들과 그것을 저지하려고 했던 경찰 사이에서 벌어진 대치 사건이다. 광주 시민과 경찰은 광주...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강수[1961~1980]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진압봉에 맞은 친구의 부상 소식을 듣고 시위에 참여하여 끝까지 항쟁하다가 5월 27일 옛 전라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용충[1954~1980]은 1980년 5월 21일 금남로[광주광역시 동구 관내 명예도로로 지정된 유네스코 민주인권로]에서 군용 트럭에 실린 사상자들을 보고 시위에 참여하여 항쟁하다가 광주교도소 앞에서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이정연[1960~1980]은 1980년 5월 25일부터 옛 전라남도청에서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항쟁 마지막 날인 5월 27일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연세대학교 정문 앞 시위 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6.10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전라남도 광주시 출신의 민주화운동 열사. 이한열(李韓烈)[1966~1987]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광주동산초등학교, 광주동성중학교, 광주진흥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87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당시 한국 사회는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과 개헌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재철[195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2일부터 시위대에서 활동하였다. 장재철은 수습대책위원회에서 사상자들을 후송하는 차량의 운전을 담당하였다. 장재철은 지원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지원동]에서 부상자 발생 소식이 들려와 후송 차량을 운전하고 가던 중 봉쇄 작전을 수행하고 있던 계엄군의...
-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활동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장하일[1942~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발생한 뒤 5월 21일 동생과 함께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옛 전라남도청 가까이 다다랐을 무렵 계엄군이 집단 발포를 하였고, 장하일은 이때 총탄에 맞아 이틀 뒤에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전영진[1962~1980]은 5월 21일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옛 전라남도청으로 향하였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던 오후 1시경 전라남도청 근처 노동청 광주지방사무소[지금의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있던 전영진은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정민구[1955~1980]는 시민군으로 활동하면서 전라남도 광주시 외곽을 순찰하던 중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정학근[195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대훈[1947~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조사천[1946~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시위에 참여하던 중 5월 21일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었을 때 옛 전라남도청 부근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채수길[1953~?]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던 중 행방불명이 되어 무명열사로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 비석만 세워져 있었다. 21년 뒤인 2001년 무연고 사망자 유골에 대한 유전자 감식 결과 채수길의 유골이 발견되어 이름을 되찾고 국립5.18민주묘지로 이장되었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한영길[1950~?]은 1980년 5월 21일 5.18민주화운동 시위에서 시민군 트럭에 탑승해 있던 것이 목격되었다. 그 뒤 가족들이 찾아 헤맸으나 두개골 총상으로 얼굴이 심하게 훼손되어 알아보지 못하였다. 망월묘지공원[5.18구묘지]에서 신원 미상의 시신에 대한 지문 감식 결과, 채수길의 시신이 확인된 뒤에 가족들은 시신을...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허봉[1956~1980]은 1978년부터 전라남도 광주시에 있는 들불야학에 다니고 있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5월 15일부터 민주화 시위에 참여하였던 허봉은 5월 20일 전일빌딩[지금의 전일빌딩245] 근처에서 계엄군에게 붙잡힌 뒤 대검에 머리를 찔려 사망하였다....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성규[1947~?]는 조선대학교 출신으로 1980년 당시 전라남도 광주시 충장로1가[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1가]에서 음악감상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에 대학생들과 교류가 많아 불안한 시국을 잘 알고 있던 홍성규는 5월 18일부터 5.18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고, 5월 20일 시위 중 계엄군에게 머리를 구타당한 뒤 사망...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순권[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재수생이었다. 5월 18일부터 줄곧 시위에 참여하다가 5월 20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숙식하며 시민학생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5.18민주화운동 마지막 날인 5월 27일에 계엄군이 전라남도청에 대대적으로 진입하면서 홍성규는 계엄군...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홍인표[1960~1980]는 1980년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달아오르던 민주화 시위에 5월 15일경부터 참여하였다. 5월 18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광주시에는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5월 21일 옛 전라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있던 때, 홍인표는 형의 심부름을 나와 남동[지금의 광주광역시 동구 남동] 광천주조장...
-
전라남도 광주시에 거주하였던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황호걸[1960~1980]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방송통신고등학교에서 공부하며 낮에는 직장에 다니는 근로자였다. 5월 18일부터 시민군으로 활동하다가 5월 22일부터는 옛 전라남도청에서 사망자 시신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5월 23일 황호걸은 수 명과 함께 사망자를 수습할 관을 구하러 전라남도 화순군으로 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