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60001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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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武臺-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유적/터 |
지역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임선화 |
문화재 지정 일시 | 1998년 1월 12일 - 상무대 옛터 5.18 사적지 제1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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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상무대 옛터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
성격 | 옛터 |
문화재 지정 번호 | 5.18 사적지 제17호 |
[정의]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사령부 전남북 계엄분소가 설치되었던 곳이자, 광주 시민이 붙잡혀와 무자비한 고문과 구타를 당한 곳.
[개설]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전라남도청 진압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체포된 광주 시민들은 극심한 고통을 받았다. 계엄군들은 연행자들을 군홧발로 짓이기며 걸어다녔고, 계단을 포복으로 기어내려가게 하였다. 이렇게 끌려간 곳이 상무대 영창이었다. 이들은 상무대 영창에 도착하자 머리를 땅에 댄 채 땅바닥을 찧으면서 들어가야만 했다.
상무대 영창은 반원형의 커다란 공간을 부채 모양으로 6개로 나눠 배치하였는데, 비좁은 앞쪽만 철창으로 터져 있었다. 중앙에 있는 헌병이 영창 내부를 한꺼번에 감시할 수 있는 구조이었다. 나무로 된 마룻바닥의 방 한 칸에는 30명도 들어가기 힘들 만큼 비좁았지만 계엄군은 150명씩 밀어 넣었다. 5월 27일 연행자 590명에 기존에 연행된 300여 명까지 한꺼번에 수용되었다.
상무대에는 군사법정도 있어서, 체포된 이들은 군사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군사법정에서 시민들에게 내란죄를 씌워 사형부터 중형까지 선고하였다.
[변천]
5.18민주화운동 당시 육군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있었으며, 계엄사령부 전남북 계엄분소가 설치되었다. 이곳에서 계엄군 주요 지휘관 회의가 열렸고, 시민수습대책위원들과 계엄군 수뇌부가 협상을 벌이던 곳이었다.
[위치]
현재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일대에 해당되는데, 개발이 이루어져 정확한 지역을 짚기 어렵다.
[현황]
상무대 옛터는 주거 지역이 되었으며, 기존의 상무대는 전라남도 장성군으로 이전하였다.
[의의와 평가]
5.18민주화운동 때 연행된 이들이 갇히고, 고문받고, 재판받았던 곳이었다. 현재 김대중컨벤션센터를 비롯하여 5.18 자유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역사 교육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