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14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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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憲宗 |
영어공식명칭 | Heonjong |
분야 | 역사/ 전통 시대 |
유형 | 인물/왕족·호족 |
지역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9-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수진 |
[정의]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경릉에 묻힌 조선 후기의 왕.
[개설]
헌종(憲宗)[1827~1849]은 조선의 제24대 왕으로, 8세에 즉위하여 순원 왕후(純元王后)의 수렴청정이 있었다. 즉위 시기 전반적으로 삼정의 문란과 외척 세력으로 인한 국정의 혼란으로 민생고가 가중되었다.
[가계]
헌종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이름은 환(奐), 자는 문응(文應), 호는 원헌(元軒)이다. 1827년(순조 27) 7월 18일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순조(純祖)이고 아버지는 뒤에 익종(翼宗)으로 추존되는 효명 세자(孝明世子)이다. 어머니는 신정 왕후(神貞王后)로 풍은 부원군(豊恩府院君) 조만영(趙萬永)의 딸이다. 첫 번째 비는 영흥 부원군(永興府院君) 김조근(金祖根)의 딸 효현 왕후(孝顯王后)였으나 단명하였다. 계비는 익풍 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 효정 왕후(孝定王后)이다.
[활동 사항]
헌종은 효명 세자가 옥을 아로새긴 나무를 담은 갑(匣)을 태몽으로 꾼 후 1827년(순조 27) 7월 18일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천자문(千字文)』을 읽는 등 일찍부터 학문에 소질을 보여 아버지 효명 세자를 기쁘게 하였다.
1830년(순조 30) 5월 6일, 효명 세자가 22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이때 헌종은 4세였다. 9월 16일 중희당에서 왕세손 책봉 의례를 거행하였다. 1834년(순조 34) 11월 13일에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8세의 나이로 경희궁 숭정문에서 즉위하였다. 동시에 김조순(金祖淳)의 딸이었던 순조의 비 순원 왕후의 수렴청정도 시작되었는데 순원 왕후의 오빠인 김유근(金逌根)이 정사에 깊이 관여하였다. 1837년(헌종 3) 영흥 부원군 김조근의 딸과 가례를 올렸으나, 효현 왕후는 1843년(헌종 9) 16세로 단명하였다.
1840년(헌종 6) 대왕대비가 왕비로 책봉된 지 40년을 축하하는 예를 행하고 동시에 수렴청정도 거두면서 헌종은 직접 정사를 돌보기 시작하였다. 1845년(헌종 11)에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의 간행을 명하였다. 1848년(헌종 14)에는 한 달 동안의 요역과 각도에 체납된 환곡 3만 석을 탕감해 주었으며, 잦은 수해에 고통 받는 백성들을 위해 조세를 줄이고, 요역을 가볍게 하고, 창고를 열어 굶주리지 않게 하고, 물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등 민생의 안정과 구휼에 힘썼다. 1849년(헌종 15) 6월 6일 창덕궁 중희당에서 23세로 사망했다.
헌종 대에는 천주교 박해가 크게 있었다. 1839년(헌종 5) 7월 13일 천주교인을 색출하기 위하여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실시하여 천주교인을 알면서도 관에 고발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고 하였다. 8월 13일에는 주교 범세형(范世亨)[Imbert, L. J. M], 나백다록(羅伯多祿)[Maubant, P. P], 정아각백(鄭牙各伯)[Chastan, J. H.]과 정하상(丁夏祥), 유진길(劉進吉) 등을 추국하고 처형하였다. 이것이 기해박해이다.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전역에서 천주교 탄압이 자행되었다. 1846년(헌종 12)에는 최초의 조선인 신부였던 김대건(金大建)이 처형되기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원헌집(元軒集)』 5권과 『보소당 인존(寶蘇堂印存)』 3권이 있다.
[묘소]
헌종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경릉이다. 경릉은 헌종과 효현 왕후, 효정 왕후의 순서로 모셨는데 우왕좌비(右王左妃)의 원칙을 따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