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2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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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巖朴雲孝子旌閭碑 |
영어의미역 | Gate Monument Erected to Praise Conduct of Bak Un |
이칭/별칭 | 박운 정려비,박운 효자비(朴雲 孝子碑)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 213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광수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5년 3월 14일 - 용암박운효자정려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3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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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용암박운효자정려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성격 | 석비 |
양식 | 갈형비(碣形碑) |
건립시기/일시 | 1580년 |
관련인물 | 박운 |
재질 | 사암(沙巖) |
높이 | 121㎝ |
너비 | 53㎝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 213 |
소유자 | 밀양박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에 있는 조선 전기 인물 박운(朴雲)의 정려비.
[개설]
박운은 밀양인(密陽人)으로 자는 택지(澤之) 호는 용암(龍巖)이다. 고려시대 우정승(右政丞) 박화(朴華)의 후손으로 진사 박종원(朴宗元)의 아들이다. 1493년(성종 24) 해평 고리곡(古里谷)에서 출생하였다. 1519년(중종 14)에 진사(進士)에 입격하였으나 당시는 사화가 잦은 때라 관직에 나가지 말라는 부친의 엄명에 따라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또한 효행이 특출하여 40년간 모친에 대한 봉양이 극진하였다. 천수를 다하여 모친이 타계하자 그 애절함이 하늘에 사무쳤으며, 3년 여묘(廬墓)에 정성을 다하였다. 또한 임종 직전까지도 부모의 은혜를 잊지 못해 조석으로 사당(祠堂)에 참배하며 “부모님의 마음을 위하고 은혜를 항상 잊지 않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며 곧 효도”라고 한 공자의 말을 실천하였다. 1562년(명종 17) 70세로 타계하자 박운의 효행을 표창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박운의 사후 18년 만인 1580년(선조 13) 정려가 내려져 비와 비각이 세워졌다. 2005년 3월 1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갈형비(碣形碑)로 비신은 높이 121㎝, 너비 53㎝, 두께 23㎝이며, 비수는 높이 52㎝, 너비 77㎝, 두께 28㎝이고, 비좌는 높이 16㎝, 너비 87㎝, 두께 52㎝이다. 비수와 비신이 한 돌로 조성된 일체형(一體形) 비갈이다.
[금석문]
비의 앞면에는 ‘효자성균진사박운지려(孝子成均進士朴雲之閭)’라 새겨져 있으며, 오른쪽 면에 건비 연도가 ‘황명만력팔년경진칠월일립(皇明萬曆八年庚辰七月日立)’이라 각자되어 있다. 제명은 명필 석봉(石峰) 한호(韓濩)의 친필로 해서체(楷書體)이다.
[현황]
구미시 해평면 괴곡리 고리실마을 입구에 남서향으로 서 있다. 맞배집 단칸 비각 내에 보존되어 있으며, 비의 하부가 오랜 세월 풍화 작용으로 인하여 박락 현상(剝落現狀)이 심하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해평면 괴곡리에 정착한 밀양박씨 일문의 역사와 효자 박운의 효행 사실이 후진 교화에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