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512 |
---|---|
한자 | 姓氏 |
영어의미역 | Family Name Residing for Generations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집필자 | 김용만 |
[정의]
경상북도 구미 지역에 거주한 토착 성씨.
[개설]
구미 지역에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등에 나오는 토성(土姓)·내성(來姓)·사성(賜姓)·속성(續姓)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씨와 후대 어느 시점에서 수학(修學)·혼인 등으로 이주해온 성씨들이 있다. 어느 정도 족세를 유지하면서 세거해온 성씨로는 선산김씨·일선김씨·안강노씨·벽진이씨·인동장씨·해평길씨·해평윤씨·전주최씨·밀양박씨·진양하씨·김해허씨·청송심씨 등이 있고, 이외에도 해주정씨·의성김씨·상산김씨·신천강씨·덕산황씨·덕수이씨 등이 있으나 소수이다.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등재되어 있으나 후대에 자료를 찾기 어려운 성씨는 선산의 백씨(白氏)·심씨(沈氏)·조씨(趙氏)·진씨(秦氏)·최씨(崔氏), 해평의 전씨(全氏)·손씨(孫氏), 인동의 유씨(劉氏)·심씨(沈氏)·고씨(高氏) 등이다. 이 가운데 해평손씨(海平孫氏), 해평유씨(海平柳氏), 해평전씨(海平全氏)는『일선지(一善誌)』를 비롯한 몇몇 읍지류(邑誌類)의 성씨조에 임진왜란 이후 없어졌다고 서술하고 있을 뿐 달리 상고(詳考)할 자료는 전하지 않는다.
[선산김씨]
선산김씨(善山金氏)는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 들성을 중심으로 거주해 왔으며, 김취문의 후손이 많다. 전성기에는 130여 호에 달하였으나 근래에는 40~50호 정도이다. 그나마도 아파트 건립 계획이 확정되어 기존 주택들은 거의 철거되었고, 문화재로 지정된 한옥 건물과 여타 재실·서원 등이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이건되었다.
[일선김씨]
일선김씨(一善金氏)는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라는 구미시 선산읍 신곡리 재궁마을을 중심으로 거주해 왔으며, 김주(金澍)의 후손으로 좌의정을 역임한 김응기(金應箕, 1457~1519)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다.
[안강노씨]
안강노씨(安康盧氏)의 도시조 노수(盧穗)는 본래 중국 탁주(涿州) 범양현(范陽縣) 사람이다. 당 선종 때 아들 9형제를 데리고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에 옮겼다가 다시 용강(龍岡) 쌍제촌(雙梯村)으로 이주하였다. 신라 조정에서 노수를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여 계림(鷄林)에서 생을 마치게 했다. 아홉 아들 중 안강백(安康伯)에 봉해진 노곤(盧坤)을 시조로 하고, 노광한(盧光漢)을 중조(中祖)로 한다. 그 일파가 선산에 살았으며, 이외 상주·의성·개령·용궁·예천·군위 등지에도 살았다. 노인도(盧仁度) 대 전후에 구미 봉곡동에 살았고, 세거지인 독동마을 입향조는 3세인 노관(盧綰)이다. 현재 독동마을에는 역락재공파(亦樂齋公派) 파조인 노경륜(盧景倫)의 후손이 영남유교문화진흥원을 만들어 영남 지역 문집 및 고문서 수집과 자료전시를 위한 한옥을 건립하는 등 영남 사림파 형성의 본거지였던 선산의 역사적 의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벽진이씨]
벽진이씨(碧珍李氏)는 구미시 광평동 다송과 형곡동 시무실을 중심으로 하여 이민선의 후손이 살고 있다. 구미시 봉곡동 별남에는 이약동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인동장씨]
인동장씨(仁同張氏)는 구미시 인의동 남산마을 일대에 장현광의 후손인 남산파가 살고 있고, 구미시 오태동과 칠곡군 석적면 중리에도 장현광의 후손 일부가 살고 있다. 구미시 황상동에는 장잠(張潛)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해평길씨]
해평길씨(海平吉氏)는 구미시 도량동 밤실[栗洞]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길재의 후손은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면 불이리로 많이 이주하여 선산에는 족세가 미약하다. 길재의 유적으로 채미정·지주중류비·길재 묘소가 있다.
[해평윤씨]
해평윤씨(海平尹氏)는 고려시대에는 해평에 거주하였으나 일찍이 서울에 올라와 벼슬에 나아갔으므로 시조 산소가 남아 있을 뿐이고, 현재는 5~6호 정도가 명맥을 잇고 있다.
[전주최씨]
전주최씨(全州崔氏)의 입향조는 최수지이며, 해평면 해평리 일대에 최현(崔晛)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지정문화재로 구미 쌍암 고택과 해평동 북애 고택이 있다.
[밀양박씨]
밀양박씨 경주공파는 경주부윤을 지낸 박수홍(朴守弘)의 후손들이 구미시 봉곡동 일원에 살고 있었으나 거의 이주하여 집성촌의 모습은 멸실되었다. 유적으로는 봉곡동 효열비각 외에 묘소·신도비와 재사인 백인당이 있다. 밀양박씨 용암공파는 용암(龍巖) 박운(朴雲)의 후손이 세거한 해평면 괴곡리 일대에 현재 20호 정도가 살고 있다. 밀양박씨 송당공파는 송당(松堂) 박영(朴英)의 후손들이 구미시 선산읍 신기리 송당마을에 세거해 왔다. 유적으로는 박영의 묘소·신도비·불천위 사당이 있다.
[진양하씨]
진양하씨는 선산읍 완전리 일원에 거주하고 있지만, 하위지가 사육신으로 처벌되면서 살아남은 일족은 안동시 서후면으로 이주하여 이곳은 후손들이 별로 없다. 유적으로는 선산읍에 하위지 유허비 외에 의관묘(衣冠墓)가 있다.
[김해허씨]
김해허씨는 구미시 임은동에 허돈의 후손이 살고 있다. 허전의 제자로 한말 대유학자 허훈, 의병장 허위 등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최근에는 왕산 허위 선생 생가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준공되었다.
[청송심씨]
청송심씨는 구미시 선산읍 이문동과 구미시 봉곡동에 심온(沈溫)의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현재 이문동에 10호 정도, 봉곡동에 20호 정도가 남아 있다.
[전주유씨]
전주유씨는 고려 초 대승(大丞)을 역임한 유차달(柳車達)의 후손으로서 고려 말 완산백(完山伯) 유습(柳濕)을 시조로 한다. 증손 유의손(柳義孫)이 집현전 학사로서 단종 폐위 때 전주 황방산(黃方山)에 은거하였고, 그 손자인 유식(柳軾)이 강릉판관을 역임했으며, 그 아들 유윤선(柳潤善)이 한성 흑사동(黑寺洞)에 세거하다가 영주에 거주하던 반남박씨 박승장(朴承張)의 사위가 되어 영주 처가로 남하하였다. 그 아들인 유성(柳城, 1533~1560)이 의성김씨 김진(金璡)의 사위가 되어 안동 수곡(水谷; 무실)에 정주하였다. 그 아들인 유복기(柳復起)와 유복립(柳復立)이 외숙 김성일에게 시양(侍養)되었으며, 안동 지역에는 거의 유복기(柳復起)의 후손들이 400여 년 세거하면서 수많은 학자와 관료를 배출하였다. 안동 지역에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6~1988년경 주민 가운데 일부는 수몰을 면한 수곡 지역에 집단으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구미시 해평면 일선리로 이주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
[기타 성씨]
해주정씨가 선산읍 망정에 거주하고 있고, 도개면 신곡리에 거주하는 의성김씨는 김돈(金墩) 계열로 증손 김도화(金道和)를 배출하고 후손으로 현 선산향교 전교 김준원(金駿源)이 있다. 상산김씨는 무을면 송삼리에 거주하며 후손으로 김보륜(金輔輪) 18세손인 전 교육감 김연철(金演哲)이 있다. 이밖에 강유선(康惟善) 계열의 신천강씨, 황기로 계열의 덕산황씨, 이우 계열의 덕수이씨 등이 있으나 집성촌 형태로 거주하고 있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