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1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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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景節 |
영어음역 | Yi Gyeongjeol |
이칭/별칭 | 길보(吉甫)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용만 |
성격 | 문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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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경상북도 구미시 고아읍 예강리 |
성별 | 남 |
생년 | 1571년 |
몰년 | 1640년 |
본관 | 덕수 |
대표관직 | 황산도찰방 |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길보(吉甫). 증참찬 이천(李薦)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감찰 이원수(李元秀)이고, 아버지는 옥산(玉山) 이우(李瑀)이며, 어머니는 진사 황기로(黃耆老)의 딸로 덕산황씨(德山黃氏)이다. 삼촌이 율곡(栗谷) 이이(李珥)이다.
[활동사항]
이경절은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5년(광해군 7) 문과 회시에 통과했다. 광해군의 폐모론에 반대하고 있었던 이경절은 과거 시험의 공정성에 회의를 품고 전시에 응하지 않고 향리인 선산에 돌아가서 매학정(梅鶴亭)에서 한가히 지냈다. 당시 동지들과 의논하여 길재(吉再)의 사우(祠宇)를 낙동강 상류 지역으로 이전하였다.
인조반정 이후 천거로 황산도찰방(黃山道察訪)으로 임명되어 민심을 수습하고 황폐되었던 역로(驛路)를 완전히 복구한 공으로 상을 받았으며, 중림도찰방(重林道察訪)이 되어 역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 뒤 제용감직장·예빈시별좌·사헌부감찰을 거쳐 문경현감으로 나가서 치적을 남겼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향인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켜 의병장이 되어 문경 사람들과 함께 활약하였으나 삼전도 화약 소식을 전해 듣고 고향에 돌아가서 은거하며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사후인 1651년(효종 2) 좌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