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2006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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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代 |
영어의미역 | Three Kingdoms Period and United Silla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구미시 |
시대 | 고대/고대 |
집필자 | 박보현 |
[정의]
초기국가시대부터 통일신라 말까지 구미 지역의 역사.
[개설]
선산 지역에서는 초기 국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눌지왕 때에는 일선군의 모례(毛禮)의 집에 묵호자(墨胡子)가, 소지왕 때에는 아도(阿道)가 와서 불교를 전하기도 하였다. 일선군은 614년(진평왕 36)에 사벌(沙伐: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과 감문(甘文: 지금의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에 있던 상주(上州)의 주치소(州治所)가 이동해 오면서 일선주(一善州)로 개편되었다. 삼국통일 후인 687년(신문왕 7)에 상주가 사벌주로 옮겨가 일선주는 폐지되었고,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일선군은 숭선군(嵩善郡)으로 개칭되어 군위현(軍威縣)·효령현(孝靈縣)·이동혜현(爾同兮縣)을 속현으로 하였다.
920년(경명왕 4) 신라 왕과 고려 태조가 교빙(交聘)을 맺게 되면서 선산 지역은 후백제와 고려의 격전지로 탈바꿈하였다. 936년 신검(神劍)이 이끄는 후백제군과 고려 태조의 군대가 선산의 일리천을 사이에 두고 싸운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군이 패퇴하면서 태조는 마침내 후삼국의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당시 이 지역의 호족 김선궁은 고려 태조가 선산 지역에 와서 숭신산성을 쌓고 후백제와 마지막 결전을 벌여 대승하는데 공을 세운 고려의 개국에 공신으로, 선산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인동 지역은 삼한시대에는 진한에 속하였는데, 진한의 12개 소국 가운데 군미국(軍彌國)의 관할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군미국은 검성골에서 시작하여 지금의 구미시 황상동 일대의 평원 지대에까지 영역을 넓혀 나갔을 것이나 5세기경 신라가 이 지역에 대하여 위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3~4세기경 신라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 사동화현(斯同火縣)이라고 하였으며, 그후 신라 경덕왕 때 수동현(壽同縣)으로 개칭하였다.
[관련 유적과 기록]
구미 지역에서 삼국시대의 시대상을 알려주는 유적으로는 신라 불교의 초전지로 알려지고 있는 모례가(毛禮家)와 도리사(桃李寺)가 있다. 또한 고고학적인 자료로는 낙산동과 황상동을 중심으로 대형의 신라 고분들의 분포하고 있고, 해평 출토로 전하는 산(山)자형 입식을 단 금동관이나 보관(寶冠)이 그림이나 유물 배치 도면으로 남아 있다. 특히 6세기로 추정되는 이 금동관은 경주의 천마총에서 금관과 함께 출토되고 있어, 두 지역은 밀접한 상하 관계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동시에 구미 지역의 세력이 매우 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계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소지마립간 시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483년(소지마립간 5) 겨울에 수해에 따른 지방민 위무를 위하여 일선에 행행(行幸)하였고, 486년(소지마립간 8) 춘정월(春正月)에는 일선계(一善界) 정부(丁夫) 3,000명을 징발하여 삼년(三年)·굴산(屈山) 두 성을 개축하였고, 488년(소지마립간 10) 2월에는 ‘홀아비·과부·고아·독거노인[鰥寡孤獨]’을 위무하였다. 또한 577년(진지왕 2) 겨울 10월 일선의 북쪽에서 백제군 3,700명의 목을 자르는 대승을 거두는 장면에 대한 기록에서 구미에 대한 내용이 부분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일리천 전투 때 고려 태조 왕건과 관련하여 많은 역사적 기록과 더불어 지명설화 및 전설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