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9004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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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谷里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in Bakgok-ri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산 3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조영현 |
성격 | 고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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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수혈식 석곽묘[구덩식 돌덧널무덤]|수혈식 석실분[구덩식 돌방무덤] |
건립시기/연도 | 5세기 말~6세기 중엽 |
소재지 주소 |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 산 3 |
[정의]
경상북도 고령군 성산면 박곡리에 있는 대가야시대의 고분군.
[위치]
박곡리 고분군은 동쪽의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신라권역과 접경지대에 위치한다. 대가야읍 중심부에서 동쪽 직선거리로 10.4㎞ 떨어져 있는 박곡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박곡리 고분군이 위치한 산을 거슬러 올라가면 정상부의 산릉을 따라 성산가야와 경계를 이룬다. 동쪽에는 낙동강이, 전방 남쪽 코앞에는 여러 곡간 평지가 길게 내려와 모여든다.
남쪽 가까이에는 대가야 가장 말기의 암광 돌덧널무덤이 발굴 조사되었고, 다시 그 앞에는 대가야의 보루성이 있는 성산면 강정리 봉화산이 위치한다. 고분군에서 바라보면 박곡리 일원은 물론 강 건너 달성군 논공면과 화원면 일대의 강변 충적지가 훤히 보인다. 고분군 전방은 현재처럼 대구 쪽에서 대가야의 중심부로 진입하는 관문에 해당한다.
[형태]
산등성이에 입지한 직경 15~8m, 높이 3~1m에 이르는 봉토분 수십 기와 400여 기로 추산되는 소형 돌덧널무덤이 분포한다. 산등성이에 입지한 봉토분은 상당수가 도굴되었다가 매몰된 상태이다. 노출 상태로 있는 석곽의 경우에는 할석조와 판석조 또는 할석과 판석을 함께 사용한 소형 구덩식 돌덧널이다. 장축 방향은 거의 모두 등고선의 방향을 따랐다. 봉토분의 내부 구조는 입지와 분포 상태 등으로 보아 수혈식 석실분[구덩식 돌방무덤]으로 추정되며, 비교적 밀집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출토유물]
과거 지표 조사를 할 때에는 고분군 내 파괴된 석곽 주위에서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그릇받침 등 대가야 양식의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낙동강 동쪽의 창녕 지역을 중심으로 출토된 종형 뚜껑을 비롯한 낙동강 동안(東岸) 양식의 고배도 보였다. 노출되어 있던 토기 조각만 보면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에 만든 것이다.
[현황]
박곡리 고분군 일대에는 나무가 무성하고, 낙엽이 두텁게 쌓여 있어 가까이 가서 살펴보지 않으면 고분군이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이다. 군데군데 들어서 있는 민묘 주위에서 석곽의 일단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별도의 보호 시설 등은 없다.
[의의와 평가]
박곡리 고분군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의 차하위급 규모라고 할 수 있으나, 성산면과 다산면 일대를 포함하는 대표적인 고분군이라는 위상을 지닌다. 동쪽의 낙동강과 그 건너 신라권역을 코앞에 둔 관문의 위치에 조영된 대가야 동부권의 최대 고분군으로, 피장자(被葬者)들은 주로 일대에 살았던 유력층과 주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치와 실제 산재된 토기 조각을 통해 보듯이 유물 중에는 신라권역에서 들여온 토기 등의 유물이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접경지대의 고분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 고분군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