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200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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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秉昌 |
영어음역 | Bae Byeongchang |
이칭/별칭 | 수운(秀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철 |
출생 | 192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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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 1947년 |
활동 | 1959년 |
활동 | 1960년 |
활동 | 1965년 |
활동 | 1974년 |
활동 | 1975년 |
몰년 | 1976년 |
추모 | 1979년 |
출생지 | 경상북도 김천시 |
시비 | 경상북동 김천시 남산동 192-1 |
성격 | 시조 시인 |
성별 | 남 |
대표 관직|경력 | 김천문우회 회원 |
[정의]
경상북도 김천시 출신의 시조 시인.
[활동 사항]
배병창(裵秉昌)[1927~1976]은 호는 수운(秀雲)이며,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김천 지역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펼쳤다. 8·15광복 이후 고향 김천에서 정완영·여석기(呂石基)·김상갑(金相甲) 등과 1947년 8월에 설립된 시문학구락부[오동시문학구락부]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시문학구락부는 김천중학교 동창 또는 교사들이 주도하여 만든 시문학 단체이다. 당시 김천중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쳤던 배병창도 시문학구락부의 창립에 관여하였을 뿐 아니라 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59년 김천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활동하는 문인과 문인 지망생을 총망라하여 조직된 문학 단체 흑맥동인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김천 지역에서 문학 활동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진 시기가 흑맥동인회의 활동 시기이다. 당시 흑맥동인회 회원은 박용설, 김기환, 윤사섭, 홍성문, 정수봉, 정완영, 배병창, 장정문, 권태을, 김상문, 김상훈, 김수기, 정재호, 신현득, 김종상, 백남해, 권태문, 강숙자, 최창수, 이금숙 등이다.
당시 흑맥동인회 회원들은 동인지 『흑맥(黑麥)』, 『문학령(文學嶺)』, 김천문화원에서 발간한 『소문화(小文化)』를 통해 작품을 활발히 발표하였다. 배병창도 1966년 4월 『소문화』 제12집에 「횃불 높이 들었으니」를 실었다. 「횃불을 높이 들었으니」 시조는 김천문화센터를 소재로 한 현대 시조이다. 또한 1974년 9월 김천 지역에서 활동하는 윤사섭, 권태을 등 문인들과 동호인들이 주축이 되어 2차로 만든 김천문우회(金泉文友會)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학문과 저술]
배병창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김천 지역에서 활발하게 시조 작품 활동을 한 대표적 문인이다. 『나기와 종』[1960], 『항아리』[1965], 『송학과 이슬』[1975] 등의 시조집을 발표하였다. 대표적인 시로는 「旗」, 「거울」, 「春日閑居」 등이 있다. 특히 문인으로 등장시킨 작품은 196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旗」이다. 「旗」는 우리 민족의 염원을 노래하는 시라고 할 수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旗」
가슴에 새겨 간직 꿈속에 그린 보람
금빛 이 아침에 의젓이 휘날려라
안으로 되우 끓은 피 고스란히 바치려오
아아 꽃을 땅도 없고 흔들 하늘이 없던
차마 그 고비 아슬아슬 하였어라
겨레의 소원 이루어 다소곳이 섬기리
이 밝은 아침엘랑 구석구석 날려 보라
저 하늘 주름잡아 펄럭이는 높은 뜻을
오늘도 고개 숙이어 두 손 고이 모으오
[상훈과 추모]
1979년 남산공원에 시비를 세울 때 배병창 시비가 세워졌다. 앞면에는 ‘수운배병창선생시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旗」의 전문이 실려 있다. 배병창의 문학적 열정은 자녀들에게 이어져 딸과 아들도 대구와 서울에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하였다. 딸 배정미는 1993년 『시문학』으로 등단하여 『목관악기의 꿈』[3명 공저, 1991]을 출간하는 등 대구 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하였다. 아들 배수열은 1993년 문학지 『시와 시인』으로 등단하여 서울에서 문학 활동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