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왕조가 존속한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기도 가평 지역의 역사.

[행정구역]

가평 지역에는 통일 신라 시대에 가평군(嘉平郡)과 준수현(浚水縣)이 설치되어 있었다. 두 지역 모두 고려 시대에는 춘주(春州), 즉 오늘날의 강원도 춘천시에 속하였는데, 준수현의 경우는 조종현(朝宗縣)[오늘날의 조종면과 상면]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 『고려사』 지리지는 가평 지역의 대표적인 산으로 화악산과 청평산을 들고 있다. 화악산은 가평군 북면에 있는 산이며, 청평산은 가평의 청평산과 춘천시 북산면의 청평산이라는 두 가지 의견이 있는 산이다. 한편, 오늘날의 설악면 지역은 고려 시대에는 양근현(楊根縣)에 소속되어 있었다. 양근현은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으로, 고려 시대 당시에는 가평 지역과 직접 관련되지는 않았다.

[교통]

개경에서 춘천에 이르는 고려 시대 교통로를 『고려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가평에는 감정역(甘井驛), 조종에는 연동역(連同驛)이 있었다. 감정역은 조선 시대 가평현 남쪽 15리에 있던 감천역으로 생각되는데, 현재 청평면 상천리에 해당한다. 연동역은 조선 시대 가평현 서쪽 45리에 있던 연동역과 같은 곳으로 생각된다. 현재의 상면 연하리에 해당하는 듯하다. 조종-가평-춘주로 이어지는 교통로는 수도 개경에서 북한강 중·상류 쪽으로 진출하는 길목에 위치하는 교통로로, 개경과 강원도 지역을 직접 연결해 주는 중요한 길이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1383년(우왕 9)에 강릉 지역에 침입한 왜구가 강원도 내륙의 춘주도를 이용하여 개경으로 진출하려 한 사실도 확인된다. 당시 왜구들은 낭천(浪川)[지금의 강원도 화천군]-양구-춘주를 차례로 함락시키고 10월에 가평에 이르렀는데, 고려 원수 박충간(朴忠幹)이 왜구 6명의 머리를 베면서 분전하자 춘주 청평산으로 퇴각하였다.

[인구와 경제]

고려 시대 가평 지역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료는 거의 없다. 다만 조선 초기의 기록을 참조할 수는 있는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조선 초기 가평 지역의 호수는 288호, 인구는 937명이었다. 고려 시대에도 1,000명 정도의 주민이 살았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토지 현황이나 생산물에 대해서도 역시 『세종실록지리지』가 참고되는데, 간전(墾田) 3,057결, 논 123결로 기록되어 있다. 작물로는 오곡·조·팥·참깨·뽕나무·삼 등을 재배한 듯하고, 특산물로는 꿀, 영지, 복령(茯苓), 잣, 송이, 느타리버섯, 산겨자, 당귀, 밤 등이 산출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불교 문화]

가평 지역은 고려 시대 불교사에서 나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가평의 화악산과 운악산에 용천사(龍泉寺), 영통사(靈通寺), 현등사(懸燈寺), 영취암(靈聚菴), 영제암(永濟菴), 혜수암(惠壽菴), 미라암(彌羅菴), 지장암(地藏菴) 등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 고려 시대에 이미 창건되어 있던 사찰로 짐작되는데, 현재 남아있는 사찰은 현등사뿐이다. 『운악산현등사사적(雲嶽山懸燈寺事蹟)』에는 신라 법흥왕 때 인도 승려 마라가미(摩羅訶彌)가 중국을 거쳐 신라로 오자 가람을 세워주고 산 이름을 ‘운악’이라고 하였는데, 신라 말에 도선법사가 중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후 고려 중기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주춧돌만 남은 터에 절을 다시 세우고 현등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외에 화악사(華岳寺)라는 절에 혜조국사(慧照國師)가 주지로 있었는데, 이자현(李資玄)[1061~1125]과 왕래하였다고 한다. 청평산에서 수도 생활을 하던 이자현이 이웃에 있는 화악사의 주지인 혜조국사를 자주 찾아가 선의 교리를 물었다고 하는데, ‘화악사’라는 이름은 『고려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국사가 머물렀던 사찰이므로 규모나 격이 상당하였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혜조국사는 예종 때 왕사(王師)와 국사(國師)가 된 담진(曇眞)과 동일한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다음으로 가평 지역에서 중요한 불교 유적으로 설악면 설곡리에 있는 소설암 터를 빼놓을 수 없다. 소설암은 원증국사(圓證國師) 보우(普愚)[1301~1382]가 머물렀던 곳이다. 보우는 공민왕 대에 불교 개혁을 이끌었으며, 조계종의 중흥조로 여겨질 만큼 한국 불교계에 큰 영향을 끼친 승려이다. 공민왕은 소설암이 있던 미원장(迷元莊)을 미원현으로 승격시켜주기까지 하였다. 보우가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자 이색(李穡)·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이 잇달아 비문과 사리탑 명문을 지었다. 또 자세한 행장(行狀)이 작성되는 동시에, 생시의 어록을 모은 『원증국사어록』도 만들어졌다. 소설암 터에서 보우의 탑비 편 일부가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