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36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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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聚瀛亭 |
영어음역 | Chwiyeongjeong Pavilion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강문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임호민 |
성격 | 정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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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기와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93년(고종 30) |
관련인물 | 서상우(徐相雨)|호산(壺山) 정홍기(鄭鴻基)|하석(荷石) 최용근(崔龍根)|윤서(潤西) 최원집(崔元集)|오월(梧月) 정봉화(鄭鳳和)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강릉시 강문동 |
소유자 | 취영계 |
[정의]
1893년(고종 30)에 취영계(聚瀛契) 계원들의 모임장소로 건립된 정자.
[개설]
강릉시 강문동에 있는 취영정(聚瀛亭)은 1893년(고종 30년)에 건립되었다. 건립주체 18명이 취영계원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계회를 열면서 시사(詩社)를 개최하거나 계원 상호간에 친목을 도모하는 장소로 활용하였다. 정자는 방과 마루 각 1칸이며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이다. 취영계는 1888년(고종 25) 죽도 아래에서 18명의 인원이 결성한 사족계이다. 계원들은 사근암(沙斤岩)과 무릉암(武陵岩) 등지의 반석에 계원들의 이름을 각자하였다. 계수(契首) 정홍기(鄭鴻基)가 정자의 기문을 지었으며, 추당(秋堂) 서상우(徐相雨)가 주련시(柱聯詩)를 지었다. ‘경신육월십칠일신묘자시입주동월신시상량(庚申六月十七日辛卯子時立柱同月申時上樑)’이라고 적은 상량문이 있다.
[명칭유래]
정자의 이름은 ‘사취어영(士聚於瀛)’ 즉 선비들이 임영에 모였다는 의미인데, 계원이 18명인 것은 정관십팔학사(貞觀十八學士)에 견준 것이다.
[위치]
경포호와 동해 바다를 잇는 강문천 옆 죽도(竹島) 밑에 있다.
[금석문]
상지이십육년무자모춘하한(上之二十六年戊子暮春下澣) 호산(壺山) 정홍기(鄭鴻基)가 쓴 「취영정기(聚瀛亭記)」와 경신중양일(庚申重陽日) 윤서(潤西) 최원집(崔元集)이 쓴 「취영정중수기(聚瀛亭重修記)」, 임인년에 작성된 「취영정기(聚瀛亭記)」, 상지즉위삼십년계사춘삼월상한(上之卽位三十年癸巳春三月上澣) 하석(荷石) 최용근(崔龍根)이 삼가 쓴 「취영정상량문(聚瀛亭上樑文)」, 세계해모춘일(歲癸亥暮春日) 호산(壺山) 정홍기(鄭鴻基)가 찬한 상량문, 경신육월십칠일(庚申六月十七日) 오월(梧月) 정봉화(鄭鳳和)가 삼가 쓴 「취영정중수상량문(聚瀛亭重修上樑文)」 등 여섯 개의 기문 현판과 계원들이 지어 걸은 서른 여섯개의 시문 현판들이 정자 안에 걸려있다. 정자의 전면에는 전서체로 쓰여진 ‘취영정(聚瀛亭)’ 현액과 측면에는 동곡(東谷)이 쓴 해서체 ‘취영정(聚瀛亭)’ 현액이 걸려 있다.
사면의 넓은 호수 한 면으로 이어지고 四面平湖摠一邊
물가 난초 대나무 섬이 가을빛을 감쌌구나 汀蘭島竹鎖光煙
시인묵객 모여들어 시문을 드내었고 衣冠隊聚文明世
받들고 지탱하여 오랜 세월 견디었네 棟守能支劫閱年
길게 뻗은 하늘아래 아스라한 가을 물빛 上下長天秋水濶
넓은 뜰 저 너머엔 넓은 바다 가뭇하네 東西大野海山遠
비가 개인 모래밭을 나그네가 지나가고 沙晴雨歇遊人去
백로만이 홀로 남아 나룻배를 지키고 있네 白鷺惟留守小船 ― 권달수(權達洙) ―
[의의와 평가]
건립주체인 취영계는 1888년(고종 25)에 결성된 사족계로서 당시 강릉 지방 재지사족들의 향촌활동 경향을 고찰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