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3016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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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方洞里靑銅器時代遺蹟 |
영어의미역 | Bronze Age Site in Bangdong-ri |
이칭/별칭 | 방동리 청동기시대유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산 109번지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박영구 |
성격 | 생활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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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면적 | 84,949㎡ |
소재지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 산 109번지 외 40필지일대 |
[정의]
강원도 강릉시 사천면 방동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
[위치]
강릉에서 속초 방향으로 7번국도를 따라 좌측에 위치한 구릉 지역이다. 방동리 일대는 태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해발 100m 내외의 구릉들이 발달해 있으며, 이 구릉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산포지, 고인돌 등 많은 선사유적들이 폭넓게 분포하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사천면 방동리 유적은 강릉 과학산업단지 조성 지역에 따른 문화재 지표 조사에서 확인된 9개소의 유적 중 시굴 조사를 통하여 방동리 A·B·C지구에서 청동기시대 유구가 확인되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결과]
방동리 유적은 3개의 구릉에서 (84,949㎥) 청동기시대 움집 터 41기, 신라시대 움집 터 6기, 구덩 유구 26기, 고인돌 하부구조 2기, 덧띠토기 단계 환호 2기, 토기요 3기가 조사되었다.
[형태]
청동기시대 움집 터는 형태가 평면 말각(장)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주거지의 크기는 길이 4m 내외의 소형에서부터 15.8m의 대형 주거지까지 다양하게 노출되었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들은 풍화암반을 파고 바닥면은 불다짐하여 단단하게 구워 사용하였으며, 기둥구멍은 주거지의 벽면을 따라 배치하였다. 다량의 소토와 목탄이 노출되는 것으로 보아 주거지의 폐기 원인은 화재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방동리 유적 C지구 구릉에서는 강원도 지역에서 최초로 청동기시대의 덧띠토기단계 환호 2기가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환호는 동―서로 등고선을 따라 호상을 이루면서 조성되었으며, 내부에서는 덧띠토기 조각과 소형의 화강암제 할석들이 다량 노출되었다. 또한 환호의 안쪽 벽면에는 목책 시설이나 망루로 추정되는 기둥구멍들이 확인되고 있다. 조사된 환호의 크기는 길이 49m, 너비 2.2m 깊이 95㎝이다.
덧띠토기 단계의 환호는 사천 방지리·화성 동학산 유적에서 환호 시설이 조사되었으나 이와 관련되는 주거 유적이 조사되지 않았거나, 조사된 예가 있다 하더라도 그 수가 적은데 반해 이번에 조사된 환호는 내부에서 덧띠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이와 관련된 주거지도 다수 조사되었다.
환호 시설은 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내부에서 투석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소형의 화강암제 할석들이 다량 노출되었다.
고인돌 하부 구조 2기는 길이 2m 내외의 소형이며, 매장 주체 시설은 각각 돌덧널[석곽]과 돌널[석관]의 형태를 띠고 있다.
[출토유물]
주거지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은 민무늬토기 항아리, 덧띠토기, 주머니 항아리, 검은 간토기 등을 비롯한 민무늬토기들과 다양한 형태의 화살촉, 유구 도끼, 반달 돌칼, 석창, 도끼 등의 석기류와, 가락바퀴, 그물추 등과 같은 많은 생활 용구들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방동리 청동기시대 움집 터는 모두 41기로, 현재까지 강원 영동지역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유적 중 가장 많은 주거지와 이와 관련된 부속 시설들이 확인되었다. 또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한 환호 시설이 확인되어 집단 취락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방동리 유적은 덧띠토기 문화의 전파 과정과 청동기시대 후기에서 철기시대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문화상을 밝혀주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며, 당시의 환호 및 집단 취락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