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301318
한자 冬德里鐵器時代遺蹟
영어음역 Dongdeok-ri Cheolgi Sidae Yujeok
영어의미역 Iron Age Site in Dongdeok-r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산 8-1번지 일대지도보기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지현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주거지
지정면적 82㎡[약 25평]
소재지 주소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산 8-1번지 일대

[정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에 있는 철기시대의 주거지 유적.

[위치]

강릉 동덕리 유적은 행정구역상으로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동덕리 산 8-1, 8-2, 8-3번지 해발 약 5~7m 높이의 해안가 모래언덕이고,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51′, 동경 128°51′에 해당된다. 유적지의 북쪽은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동해안으로 흘러드는 연곡천 하구에 이르게 되는데, 연곡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이 평야의 말단부는 사빈과 해안사구가 발달되어 있는데 강릉 이북에는 거의 연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 지역의 서쪽으로는 강호평 뜰이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모래구릉 위에 방풍림이 펼쳐지면서 동해 바다와 접하고 있다. 유적의 남쪽으로는 모래구릉이 약 1.5㎞ 정도 이어지는데 서편 경사면은 선사인들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

[발굴조사 경위]

강릉 동덕리 유적은 1991년 강릉대학교박물관의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되어 소개된 유적이다. 그 뒤 연곡해수욕장의 쓰레기를 매립하기 위하여 구덩이를 파는 과정에서 경질민무늬토기편, 두드림무늬토기편, 주거지의 윤곽선과 판자벽 등이 노출됨으로써 철기시대의 주거지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1996년에 강원도가 이곳에 수산종묘배양장을 설치하기 위해서 부지 조성작업에 앞서 부지 내의 소나무를 굴채하는 작업과정에서 유구와 유물이 노출되어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발굴결과]

동덕리 유적은 수산종묘배양장 조성지역에 한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결과 진입로 지역에서 여(呂)자형 주거지 1기가 확인되었다. 또한 주거지의 주변으로는 지상가옥으로 추정되는 기둥구멍[주혈]유구가 노출되었으나, 일부만 확인되고 있어 정확한 규모는 파악할 수 없었다.

주거지는 안인리와 양양 가평리, 그리고 횡성 둔내의 여(呂)자형 주거지와 같이 남쪽의 작은방과 북쪽의 큰방이 좁은 통로로 연결되고 있다. 조사는 먼저 주거지의 어깨 윤곽선 안에 +자 모양으로 둑을 남기고 퇴적된 흙을 차례대로 걷어 내자 북쪽 큰방은 생활면에서 약 50㎝~70㎝ 깊이에서부터 흑갈색의 비교적 단단한 진흙 바닥이 노출되었고 남쪽 작은방은 약 10㎝ 깊이에서 진흙 바닥이 노출되었다. 두 방의 연결통로는 작은방 쪽에서 큰방 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주거지 바닥은 비교적 점토가 두껍게 깔려 있으나 모래가 많이 섞여 있어 무른 편이며, 바닥은 전체적으로 고르지 못한 편이다.

[형태]

조사된 주거지는 평면 여(呂)자형으로 비교적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주거지의 장축 방향은 남-북(북→서 12°)방향으로 규모는 전체길이 13m, 폭 7.4m이다. 북쪽 큰방은 길이 9.6m, 폭 7m이고, 남쪽 작은방과 연결되는 통로는 길이 1.8m, 폭 1.4m, 남쪽 작은방은 길이 3.2m, 폭 3.8m이다. 주거지의 전체 면적은 82㎡(약 25평)이다.

[출토유물]

동덕리 유적은 여(呂)자형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바닥에서 완형의 경질민무늬토기호 2점과 아가리편 11점, 바닥편 13점, 시루편 1점, 파수편 4점과 두드림무늬토기편 4점, 화살촉 2점 등이 출토되었다. 그밖에 주거지의 퇴적층에서도 15점의 아가리편과 바닥편이 출토되었으나, 바닥 출토 토기와 특별히 구별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동덕리 철기시대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는 강원도립 수산종묘배양장 건설 공사와 관련하여 불가피하게 실시된 구제 발굴조사였다. 따라서 조사 범위도 공사대상 구역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유적의 규모 및 성격파악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러나 안인리에서 조사된 여(呂)자형 주거문화를 재확인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큰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막연하게 추정되었던 동덕리 유적의 성격과 연대 및 주변지역과의 관계 등에 관한 측면이 밝혀진 점과 유구가 매장되어 있는 정확한 위치가 파악된 점에서도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